iTunes는 과연 User Friendly한가?
iPod에 곡을 옮기려면 iTunes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야 한다. 어제 와이프가 쓸 노트북을 하나 샀는데, 노래를 iPod로 옮기기 위해 iTunes를 깔았다.
와이프는 참 난감해 했다. 노래를 어떻게 옮겨야 하는지 도통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나 역시 iTunes는 생소해서 모든 메뉴를 다 훑어 봐도 뭐가 뭔지 몰랐다.
일반적으로 노래를 옮기는 프로그램은 PC의 파일 목록과 iPod가 가지고 있는 파일 목록이 양쪽에 나와서 Drag & Drop으로 옮길 수 있도록 되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한참 동안 헤매다가 '동기화'라는 메뉴가 노래를 옮기고 받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그 메뉴를 누르자마자 iPod에 원래부터 있던 노래들이 싹 사라져 버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아니, 이럴수가! 어떻게 이런 일이?
또 한참 후에야 PC의 My Music폴더에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동기화해 버리면 iPod에 있는 곡이 지워진다는 걸 깨달았다. 맙소사!
내가 사용법을 잘 몰라서 일어난 일이니 내 탓이긴 하다. 허나 좀 지나고 나니 부아가 치밀었다. 내 잘못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건 '즉독성'이 매우 떨어지는 소프트웨어를 만든 애플의 잘못이다. 사용법이 쉽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그건 아마 소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나 같이 예전에 소프트웨어 개발을 해본 경험이 있어서 웬만한 어플리케이션 사용법을 비교적 금방 배우는 사람도 헷갈리는데, 만일 내 와이프처럼(일반 사용자를 대표하는) 기계를 잘 다루지 못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혼돈스럽고 황망할까?
단언컨데, iTunes는 휴먼 팩터(Human Factor)에 대한 고려 없이 만들어진 대표적인 소프트웨어로 '악명의 전당'에 오를 만하다. 메뉴얼을 숙독하고 훈련 받아야 겨우 사용할 수 있도록 물건을 만들었다면, 그건 사용자의 입장에서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명차라고 불리는 BMW에는 iDrive라는 장치가 있다. 이 놈 역시 사용자의 능력은 안중에 없는 물건이다. 사용하려면 수많은 조작법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어렵게 만들어야 '뭔가 있어 보인다'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건 개발자의 오만이다. 휴먼 팩터 없이 만들어진 물건은 사람들의 크고 작은 실수를 유발하고 그 때문에 자칫 엄청난 사고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의 원인도 따지고 들어가면 사용법이 복잡한 계기판 때문이었다.
iTunes가 와이프가 오랜 기간 어렵게 모은 MP3를 다 날려 버리고 말았다. 와이프는 자신이 조작했어도 날렸을 거라면서 나를 위로하지만, 매우 유감인 건 어쩔 수 없다.
* 휴먼 팩터 = 인간을 기계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기계를 인간에 맞추기 위해서 고려해야 할 인간의 조건들을 의미함. 예를 들어, 인간이 한번에 7개 정도의 정보만 인지할 수 있다는 것도 휴먼 팩터의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