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가 없는 자동차 회사   

2011. 7. 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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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여러분이 어느 자동차 회사에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그 회사에 들어서자마자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자동차 회사라면 으레 있을 법한 거대한 공장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일하는 직원들도 고작 12명에 불과하다. 그 회사 직원으로부터 설명을 들으니 더욱 혼란스럽다. 자동차 회사가 가장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디자인 파트가 이 회사엔 없으니 말이다. 엔진이나 차체를 연구하는 R&D 부서도 없다. 디자인, 연구개발, 생산 기능이 없는 회사를 자동차 회사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 책 ‘매크로 위키노믹스’에서 소개하는 로컬모터스의 사장인 제이 로저스는 여러분에게 한껏 웃어 보이며 “우리는 새로운 개념의 자동차 회사다”라고 분명하게 대답할 것이다.



집단지성의 잠재력에 눈뜨다
로컬모터스에 디자인 기능이 없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그들에겐 상근 직원으로 이뤄진 디자인 부서가 없을 뿐이다. 대신에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5000명의 디자이너로 구성된 커뮤니티를 적극 활용하는 전략을 취한다. 자신의 디자인이 채택되면 그 디자이너에게 상금을 지급하는 방법으로 디자이너들을 유혹하는 것이다. 로컬모터스는 디자이너들이 자발적으로 제시하는 수많은 시안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해서 단 14개월 만에 불과 200만 달러의 자금으로 오프로드 경기용 자동차인 랠리 파이터를 생산해냈다. 일반적인 자동차 회사가 수 억 달러를 들여 2년 만에 신차를 개발하는 것과 매우 대비되는 성과다.
 
이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독특한 협업체계와 그들의 집단지성을 활용하여 혁신과 새로운 부를 창출하는 기업들이 속속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이 책 ‘매크로 위키노믹스’의 저자들은 말한다. 이런 현상은 그들의 전작인 ‘위키노믹스’에서 이미 예견한 바 있는데, 이번에 낸 신작에는 ‘매크로’라는 이름을 덧붙여서 위키노믹스가 국지적이고 일시적인 현상으로부터 전세계로 확산되고 더욱 촘촘하게 얽혀 가는 거대한 트렌드임을 역설한다. 미시경제가 아니라 거시경제 차원에서 위키노믹스를 조망하고 그것으로부터 뭔가를 배우고 실천해야 함을 주장한다.
 
로컬모터스와 같은 신생기업 뿐만 아니라 P&G와 같이 역사가 오래되고 거대한 다국적 기업 역시 매크로 위키노믹스적인 ‘오픈 비즈니스’로 새로운 성공을 구가하고 있음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P&G는 연구 개발 분야에 외부 인력의 전문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기업으로 이름이 높다. 그들은 풀리지 않는 연구 난제를 내부에서 풀기 위해 끙끙거리는 여느 기업과는 달리 이노센티브닷컴과 같은 사이트에 공개하거나 광범위한 여러 네트워크를 동원해서 세계 어딘가에 있는 전문가의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방식을 2000년부터 이어오고 있다. 연구센터와 같은 물리적인 시설 없이도 200만 명이나 되는 가상의 연구부서를 가지는 셈이다. 기업 내외부의 경계를 구분하지 않는 P&G는 이처럼 글로벌 인재 풀(pool)이 가진 막강한 잠재력을 활용함으로써 150개 분야에서 300개 브랜드를 아우를 수 있게 되었다.

기회는 열려있다
매크로 위키노믹스는 로컬모터스와 P&G와 같이 명민한 기업들에게는 기회로 작용하지만 여전히 과거의 방식에 젖어 있는 기업들에게는 엄청난 불행을 야기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업종이 바로 신문이다. 새로운 웹의 등장으로 인터넷은 수동적으로 읽고 듣고 보는 행위 이상으로 발전했다.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해서 공유하고 교제하며 협업하고 창조한다. 이런 현상 속에서 기자들이 기사를 작성하여 가판과 배달 판매, 지면 광고로 돈을 버는 전통적인 신문은 설 자리를 빠르게 잃어가는 중이다. 저자들은 신문의 몰락은 우연이 아닐뿐더러 갑작스레 발생한 일도 아니며 막을 수 있는 일도 아니라고 단언한다. 이미 신문의 몰락은 정해진 일이라는 소리다.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과 같은 SNS에서는 얻는 정보보다 신문 기사를 덜 신뢰한다는 사실은 신문업계에게 매우 충격적인 이야기다.
 
그렇다면 신문업계엔 희망은 없는 것일까? 저자들은 ‘허핑턴 포스트’와 ‘가디언’에서 해답을 찾는다. 허핑턴포스트는 매달 2000만 명이 구독하는 온라인 신문으로 구독자 수가 매년 50%씩 급성장 중이다. 하지만 급여를 받고 일하는 직원은 고작 150명에 불과하다. 이런 소규모 인력으로도 대형 언론사를 뛰어넘는 이유는 역시 각지에 퍼져있는 3000명의 기고자들과 1만 2000명의 ‘시민 언론인’이 있기 때문이다. 로컬모터스와 P&G와 마찬가지로 회사 외부의 전문인력과 함께 대규모 협업체계를 구축한 것이다. 기사의 소비자와 생산자가 공동 참여하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새로운 목소리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훌륭한 기사를 전달하자는 철학을 실현하고 있다. 
 
허핑턴 포스트가 태생부터 매크로 위키노믹스를 실현했다면, 오래된 영국 신문인 ‘가디언’은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이제는 절대 돈을 벌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찍이 깨달은 기업이다. 자체 인력으로는 전세계에 퍼져 있는 ‘인간 센서’를 이길 방법이 없다고 그들은 느꼈다. 가디언은 가능한 한 많은 독자들에게 다가가고 혁신을 극대화하기 위해 콘텐츠에 대한 통제권을 스스로 포기하고 기사, 동영상, 사진 등 방대한 자료를 공개함으로써 사람들이 그것들을 재사용할 기회를 주었다. 자기네 기사들이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퍼지게 하여 새로운 서비스와 수입원을 발굴할 기회를 찾고자 한 것이다. 사람들이 가디언의 기사를 더 많이 재사용하고 변경할수록 가디언의 광고 네트워크가 더욱 발전할 것임을 그들은 간파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의 시대로!
저자들은 기업들이 먼저 투자하고 나중에 질문하는 방식을 더 이상 고수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고객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 다음에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글로벌 시장을 샅샅이 탐색할 줄 아는 기업이 매크로 위키노믹스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구시대적인 ‘피아의 구분’ 따위는 휴지통에 던져 버리고 외부에 있는 최고의 인재들과 함께 공동 창조할 것을 기업들에게 주문한다. 매크로 위키노믹스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환경을 조성하는 큐레이터가 되고, 공유의 문화를 활성화하며, 자기조직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또한 협업의 문화를 확대하고 심화하는 것이 중요하고, 젊은이들에게 주목하면서 그들에게 변화를 주도할 권한을 주어야 한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이렇게 혁신과 새로운 가치를 이끌어내는 매크로 위키노믹스에는 오직 장밋빛 미래만 있는 것일까? 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는 법이다. 많은 이들이 광범위한 협업과 공유체계 때문에 일자리가 줄고 임금이 깎질 지 우려한다. 무엇보다 개인정보가 유용되고 프라이버시가 존중 받지 못하는 문제가 심화되리라 걱정한다.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클라우드(cloud) 서비스를 보면서 ‘내가 그곳에 올린 자료가 나의 성향에 대한 분석 정보로 활용되는 것은 아닌지’부터 시작하여 ‘그들이 내 자료를 다른 곳에 팔거나 유용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되는 것이 사실이다. 
 
저자들은 이런 걱정들이 기우이며 피해도 적으리라 단정한다. 그들은 매크로 위키노믹스는 개방적이고 광범위한 참여를 추구하기 때문에 오히려 일자리가 창출되고 돈을 벌 기회가 공평하게 돌아간다고 주장한다. 단적인 예로 애플의 앱스토어가 생겨나 개발자들에게 수익의 70%를 주는 구조가 안착되면서 개발자나 애플이나 모두 윈-윈하게 됐으니 말이다. 허나 프라이버시 보호 문제에 대해서 저자들은 한발 물러선 입장을 취한다.  좋은 프라이버시 정책을 가질수록 사람들에게 좋은 기업이라고 평가 받게 됨을 기업들이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데에서 희망을 찾는다. 그리고 개인들도 스스로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해서 ‘온라인 행동’을 수정하는 데에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뾰족한 해법이 없기에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교육, 방송과 영화, 과학과 의료, 정부와 글로벌 문제 등 여러 분야에서 매크로 위키노믹스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또 앞으로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를 폭넓게 조망한다는 차원에서 이 책은 일독의 가치가 매우 충분하다. 협업을 단순하게 같이 모여서 회의 몇 번 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독자라면  매크로 위키노믹스에 담긴 의미를 우리 회사에, 그리고 나 자신에 어떻게 대입하면 좋을지 생각하면서 이 책을 읽어보라. 7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 오히려 짧게 느껴질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균형을 잃지 않으려면 이 책과 함께 변화하는 세상의 리더십을 탐색해 보라.

(* 이 글은 교보문고 북모닝CEO에 오늘 실린 저의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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