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 하는 회의가 돈 버는 회의   

2011. 5. 23.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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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여러분은 근무 시간의 상당 부분을 회의하는 데에 보낼 겁니다. 팀내에서 벌어지는 작은 회의 뿐만 아니라, 경영전략회의나 임원회의 같은 전사적인 회의를 준비하기 위해 몇 주 전부터 준비했을 테고 그 회의에서 나온 결과를 follow-up하기 위한 실무자 회의를 또 몇 차례 진행하겠죠. 오늘은 월요일이니 아마도 오전엔 주간회의를 하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우리는 때로는 하루 종일 회의만 하며 보냈다고 토로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회의는 조직생활을 하는 데에 떼려야 뗄 수 없는 '업무의 과정'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회의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그리고 효율적으로 잘 진행하느냐가 업무의 생산성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서점에 가보면 '회의를 잘하는 법', 'OO처럼 회의하기'와 같은 책들이 많은 것만 봐도 그렇죠. 그런 책들이 회의 운영법에 대해 조언하는 내용을 살펴보면 회의를 짧은 시간 내에 끝내기 위해서는 회의 참여자들이 반드시 회의 시작시간을 엄수하고, 회의 주제를 확실하게 공유하고, 의사결정에 집중해야 한다고 합니다.



헌데 그런 조언들은 회의를 주관하는(혹은 진행하는) 사람의 '회의 운영력'에 많은 부분을 의존합니다. 문제는 회의 주관자가 효과적인 회의 운영법을 충분하게 훈련해야 하고 참여자들도 잘 따라와야 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준수할 것들이 많고 또한 의식적으로 챙겨야 하기 때문에 아무리 회의실 탁자 위에 '효과적인 회의 운영법'을 일목요연하게 붙여 놓는다 해도 그것은 그저 장식에 불과할 때가 많습니다.

효과적인 회의에는 지침보다는 '넛지(nudge)'가 필요합니다. 미주리-콜럼비아 대학의 알렌 블루돈과 그의 연구팀은 '서서 하는 회의'의 효과에 대한 실험을 수행했습니다. 블루돈은 5명씩 이루어진 56개의 그룹에게는 회의를 서서 하게 만들고, 역시 5명씩 구성된 55개의 그룹에게는 앉아서 회의를 진행하도록 했습니다. 참여자들에게 주어진 회의 내용은 대략 10~20분 정도 걸릴 만한 사안이었습니다. 그랬더니 서서 회의를 진행한 그룹이 앉아서 회의한 그룹보다 34% 정도 짧은 시간 내에 의사결정을 내렸습니다. 회의를 짧은 시간 내에 끝냈지만 의사결정의 질적인 차이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단순하게 서서 회의를 진행하게 했더니 회의 시간이 짧아졌다는, 그리고 의사결정의 질이 앉아서 회의한 경우와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언뜻 보기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따져보면 매우 확실한 효과입니다. 회의 운영법을 교육 받고 그것에 숙달하기 위해 들이는 노력을 생각할 때 34%의 시간단축 효과는 의미가 아주 큽니다.

만일 전 직원이 1,000명이고 그들이 일주일에 1시간 짜리 회의를 한 번씩만 한다고 '보수적으로' 가정해보죠. 그렇다면 1년에 50회 정도 회의를 하게 되니까 총 50,000 man/hour 가 회의에 투여되는 셈입니다. 직원 1명이 1년에 근무하는 시간을 대략 2,000시간으로 본다면 50,000 시간은 25명분의 1년 인건비에 해당하겠죠. 직원 1명의 평균인건비를 5,000만원으로 잡는다면, 이는 12억 5천만의 비용이 회의를 위해 소요된다는 뜻입니다.

매번 회의를 서서 할 수 없을 테니 1년에 10회 정도만 서서 하는 회의를 운영한다면 이때 절약되는 비용은 얼마일까요? 1시간 짜리 회의가 34% 줄어서 약 40분 안에 회의가 끝나겠죠. 그래서 20분 만큼 절약됩니다. 이것을 계산해보면 1년에 8,500만원의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비록 이 절약되는 비용이 곧바로 회계장부에 반영되지는 않지만, 회의가 아닌 본업에 직원들이 더 많은 시간을 투여할 수 있기 때문에 서서 하는 회의가  어쩌면 8,500만원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왜 서서 하는 회의가 의사결정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도 회의 시간을 단축시킬까요? 서 있으면 앉아 있을 때보다 뇌의 활동성이 강화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디어를 짜낼 필요가 있을 때는 눕거나 앉지 말고 가볍게 산책을 하는 게 유리하다고 하죠. 회의를 서서 진행하면 발끝에서 전해지는 감각이 뇌를 계속해서 자극하기 때문에 회의의 목표에 더 집중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오래 서 있으면 다리가 아파올 것이기 때문에 회의를 빨리 끝내야 좋으리라는 생각을 회의 참여자들은 암묵적으로 공유합니다. 조는 사람도 생기지 않아서 회의에 집중할 수 있죠.

캐논의 사장이었던 사사마키 히사시는 CEO로 부임하자마자 회의 운영법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그는 회의실 탁자의 높이를 30cm 높이고 모두 선 채로 회의하자는 제안을 했죠. 또한 종이를 가지고 오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종이를 펼쳐 놓으면 낙서를 하거나 그것만 멍하니 들여다보며 회의에 몰입하지 못하기 때문이었죠. 그 결과, 회의 때 조는 사람들은 없어지고 회의시간이 대폭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아침부터 오후 5시까지 이어지던 임원회의가 오후 1시면 모두 끝났죠.

모든 회의를 서서 진행할 수 없겠지만 팀 내의 작은 회의나 부서간의 회의를 의무적으로 서서 하도록 하면 어떨까요? 특히 의사결정을 위한 회의가 아니라 '정보 공유를 위한 회의'라면 서서 하는 회의를 권장해 봅니다. 물론 처음엔 어색하고 불편하겠지만 하루 종일 회의하느라 지치고 업무에 방해 받는 경우는 제법 사라질 테니까요. 게다가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겁니다.

서서 하는 회의가 돈 버는 회의입니다.


(*참고논문 : The effects of stand-up and sit-down meeting formats on meeting outco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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