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이 실용을 압박할 때 우리는 퇴보한다   

2011. 5. 4.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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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흔했다가 요즘에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질병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소아마비'입니다. 소아마비는 폴리오라고 불리는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입니다. 초기에는 감기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면서 자연적으로 치유되는 경우도 있지만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 중 1% 정도는 팔다리나 척추에 마비 증상을 일으키는 심각한 질병이기도 했습니다. 주로 면역력이 취약한 어린이들에게서 발병되기 때문에 소아마비란 이름을 갖게 됐지만 어른도 잘 걸리는 병이었죠.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39세에 소아마비에 걸려 평생을 휠체어에 의지해야 했습니다.

사회문제로까지 인식되던 소아마비는 이제 완전히 박멸됐습니다. WHO(세계보건기구)는 1994년에 서유럽에서, 2000년에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서태평양 지역에서 소아마비가 박멸됐음을 선언했죠. 이런 성과를 달성하게 된 공은 당시 피츠버그 대학의 전염병학 교수였던 조너스 소크(Jonas Salk)에게 돌려야 마땅합니다. 그는 소아마비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다뤄지던 1952년에 소아마비 백신 개발에 성공하고 그 다음해에 백신 개발에 성공했음을 매스컴을 통해 알렸습니다.



그가 자신의 연구 결과를 논문이나 학회가 아니라 언론을 통해 발표하자 학계가 말 그대로 뒤집어졌습니다. 정식 루트를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소크의 백신이 지금까지의 방식과 다르게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예방접종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에드워드 제너가 살아있는 우두 바이러스를 사용해서 천연두를 예방하는 백신을 개발한 이후로, 학자들에게 널리 퍼진 믿음은 살아있는 바이러스를 사용해야 예방효과가 있는 백신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소크의 백신은 죽은 소아마비 바이러스를 가지고 만든 것이었죠. 그는 많은 양의 소아마비 바이러스를 시험관에 배양한 후에 거기에 포르말린을 넣어서 바이러스를 죽였습니다. 그런 다음 그것을 희석하여 몸에 주사하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이것이 학자들의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소크와 동시대에 소아마비 백신 개발에 몰두하던 앨버트 세이빈이란 사람은 소크를 민간요법자에 불과하다며 독설을 날리기도 했죠. 소크의 백신이 전혀 참신하지 못하다며 여기저기서 학자들이 비난 대열에 가세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소아마비 백신은 어쨌든 효과가 있었습니다. 소아마비 공포에 떨던 대중들은 소크의 백신을 기꺼이 수용했죠. 대중은 소아마비 백신이 죽은 바이러스로 만들어졌는지엔 아무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에겐 소아마비라는 공포에서 벗어나는 게 중요했죠. 44개 주에서 180만 명의 어린이들이 임상시험에 동참했고 1955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백신 접종이 시작됐습니다. 후에 그의 백신과 함께 그의 경쟁자인 앨버트 세이빈이 따로 개발한 백신이 접종되면서 1952년에 5만 8천명에 달하던 소아마비 환자수는 10년 후에는 1천 300명으로 뚝 떨어졌습니다.

만일 소크가 대중에게 직접 다가가서 백신 개발에 성공했음을 알리지 않고, 논문을 학회에 발표해서 동료들의 검증을 받는 일반적인 루트를 선택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그 기간이 무척 길었을 것이고 소크에게도 피곤한 일이었겠죠. 무엇보다 학자들의 검증을 받는 동안 계속해서 소아마비가 발병된다는 것이 문제였을 겁니다. 학자들의 형식주의적이고 교조주의적인 마인드가 자칫하면 소아마비의 조기 박멸을 어렵게 만들어서 대중은 질병으로 인한 고통을 감수해야 했겠죠.

보수주의는 말 그대로 기존의 틀 안에서의 안정적인 발전을 추구하는 방식이라서 필연적으로 형식주의를 낳습니다. 정해진 규칙, 믿음이나 관행과 같은 형식은 조직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도록 지켜주는 초병이라고 말할 수 있죠. 보수주의 자체는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보수주의가 자신의 아들인 형식주의에게 권좌를 빼앗길 때, 또는 형식주의를 보수주의로 오인할 때가 조직의 발전을 저해하는 문제가 야기됩니다. 형식주의는 보수주의의 또다른 아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실용주의를 압박하고 말죠.

소크를 대하던 학자들의 태도가 딱 그러했습니다. 소크는 학자들이 그렇게 반발할 것(그리고 비난을 가할 것)을 미리 간파하고서 공식적인 인정 루트를 버리고 곧바로 대중에게 다가가는 꾀를 냈죠. 어찌보면 소크를 기회주의자라고 폄하할 수 있겠지만, 형식주의에 압도 당해버린 학계의 블로킹을 뚫으려는 최선의 방법을 택했다고 봐야 옳습니다.

어떤 사람은 소크가 다른 학자보다 먼저 백신을 발명했음을 대중에게 알림으로써 엄청난 부를 쌓으려 한다고 그를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소크는 "태양에 특허를 낼 수 없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백신에 대해 특허 신청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덕에 소아마비 백신이 싸게 만들어졌고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본 겁니다. 역시 위대한 사람은 다릅니다. 형식에 압도 당하지 않은 건전한 실용주의자의 표본이라 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건전한 형식과 건전한 실용을 갖추고 둘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잡아가야 건전한 보수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조직은 얼마나 보수적입니까? 아니, 얼마나 형식적입니까? 형식이라는 큰 아들이 실용이라는 작은 아들을 괴롭히는 기이한 가족은 아닙니까? 형식이 실용을 압박할 때 조직은 퇴보합니다.

(*참고도서 : '아이코노클라스트')
(*위의 보수주의, 실용주의를 정치 이데올로기로 해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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