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조가 탄생시킨 아이폰   

2011. 4. 21.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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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의과 대학 학생들에게 아기 사진을 하나 보여주고 진단을 내려보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사진 속의 아기는 목 부분에 주름이 잡힌 흰색 가운을 입고 있었고 벽돌로 된 벽에 기대어 잠자는 듯한 얼굴이었습니다. 학생들은 그 아기에 대해 다양한 진단을 내놓았죠. 어떤 학생은 아기가 평화롭게 잠들고 있는 것으로 봐서 특이한 질병은 없는 것으로 판단했고, 또 다른 학생은 아기를 딱딱한 벽돌벽에 기대어 놨다는 것을 보고 부모가 아동 학대를 하는 것은 아닌가 의심했습니다. 하지만 깨끗한 잠옷을 입힌 것으로 보아 누군가가 잘 돌보고 있다고 판단하는 학생도 있었죠.

하지만 누구도 사진 속 아기의 상황을 정확히 묘사한 학생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기는 아픈 것도, 잠든 것도 아니라 사망했던 겁니다. 아기가 입고 있던 옷은 병원에서 입힌 수의였고, 벽돌벽은 영안실의 벽이었죠. 의과 대학 학생들은 모두 수의가 어떻게 생겼는지 또 영안실 벽이 어떤 모양인지 평상시에 이미 수차례 봤습니다.



그런데도 왜 그들은 사진 속 상황을 올바로 묘사하지 못했을까요? 그들은 사진 속 아기를 진단해 보라는 말을 듣고 암묵적으로 그 아기가 살아있다고 가정했습니다. 이런 가정을 가지고 사진을 들여다 봤기 때문에 아기가 입고 있는 옷이 수의인지, 아기가 기댄 벽이 영안실의 벽인지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보고자 하는 것만 보이는' 오류에 빠졌던 겁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특정 상황에 처할 때마다 그 상황에서 기대하는 바만 눈에 보이고 기대하지 않은 것은 보지 못하는 오류를 범합니다. 대니얼 사이먼스는 이를 '무주의 맹시(inattentional blindness)'라고 부릅니다. 자동차 운전자들은 도로에서 오토바이 운전자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오토바이가 자동차보다 크기가 작아서가 아닙니다. 그 이유는 자동차 운전자들은 도로에 자동차들만 왔다갔다 하는 모습에 익숙한 나머지 오토바이가 어딘가에서 뛰쳐 나오리라는 예상(혹은 기대)를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든 자동차 운전자가 오토바이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암묵적인 가정이 주의력을 흐리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다음의 동영상을 플레이하고 화면의 지시대로 해보기 바랍니다. 이 동영상은 대니얼 사이먼스가 수행한 유명한 실험입니다.





동영상을 보고 나서 어떤 느낌이 들었습니까? 아마 여러분 중 50% 정도는 자신의 주의력에 한탄할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인간이 주의력이 암묵적인 가정에 의해 흐려진다는 것을 안다면 지극히 정상적인 결과입니다.

이번엔 다른 동영상을 보기 바랍니다. 역시 화면의 지시대로 해보기 바랍니다.





아마 첫 번째 동영상에서 자신의 주의력에 실망했다면 이번에는 속지 않으리라 마음 먹었을 겁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떻습니까? 또다시 '무주의 맹시'에 빠지진 않았나요?

본인이 만들었든 타인이 조장했든 어떤 상황에 대한 암묵적인 가정은 예외적인 상황을 판단할 능력을 저해합니다. 전문지식을 가진다고 해서 예외상황을 금방 알아차리기도 어렵습니다. 늘 익숙한 수의와 영안실 벽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엉뚱한 진단을 내린 의과대학 학생들처럼 말입니다. 전문가들도 보고자 하는 것, 보일 거라고 기대하는 것만 잘 보이는 오류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니얼 사이먼스는 주의력 착각이나 무주의 맹시를 극복하기 위한 뾰족한 방법은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쏟을 수 있는 주의력은 한계가 있어서 '예외 상황을 잘 봐야지'라고 마음 먹으면 본래의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또다른 예외 상황을 보지 못하고 만다고 이야기합니다. 위의 두 번째 동영상이 이 주장을 뒷받침하죠.

예외 상황을 보지 못하는 오류를 이기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그 상황에 익숙하지 않은 다른 사람의 시각을 빌리는 것이 최선일 겁니다. 그런 사람들은 암묵적인 가정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에 예외적인 상황을 발견하기가 오히려 쉽습니다.

기업에서 경력사원을 채용할 때 가장 흔하게 다는 조건 중 하나가 '동종업계의 근무경력'입니다. 이렇게 동종업계의 사람들을 뽑으면 커뮤니케이션과 교육 등에 드는 비용을 아낄 수 있고 인력을 곧바로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새로운 시각을 수용하여 문제를 해결하거나 혁신을 이끄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겁니다.

애플의 수석 디자이너인 조너던 아이브는 애플에 입사하기 전에 탠저린이라고 하는 욕조 회사의 디자이너였습니다. 욕조와 아이폰? 언뜻 쉽게 연결되지 않는 조합입니다. 욕조 회사에서 변기나 욕조를 디자인하다가 애플로 들어와서 Newton(뉴튼)과 같이 시장에서 별로 성공하지 못한 제품만 디자인하던 그를 디자인 책임자로 영전시켰으니 스티브 잡스의 사람 보는 눈은 남다른 면이 있습니다. 주위 사람들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아이브를 책임자에 앉혀 숱한 히트제품을 만들게 했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욕조가 아이폰을 탄생시킨 셈입니다.

동종업계라는 울타리 안에서의 시각은 예상치 못하는 것을 보지 못하는,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악순환의 고리에 영원히 머물게 할지 모릅니다. 여러분 조직의 '전략 맹시'와 '전략 착각'을 깨뜨리고 싶다면 여러분의 산업과 특별한 구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의 시각을 적극 받아 들이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고릴라를 보지 못했다면 그들이 고릴라를 발견해 줄 테니까요.

(*참고도서 : '창조의 순간', '보이지 않는 고릴라')
(*동영상 출처 : http://invisiblegorill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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