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크고 카리스마가 있는 리더가 질 좋은 의사결정을 저하하는 집단사고(group think)를 저해한다는 이야기를 지난 번에 했습니다. 회의 때 리더 혼자 떠드는 경우, 회의 결과가 거의 만장일치로 끝나는 경우, 회의가 논의의 장이 아니라 거의 결정된 사항을 확인만 한다는 관행이 굳어져 있는 경우, 회의가 의사결정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수단으로 자주 오용되는 경우 등이 바로 집단사고가 만연해 있다는 증거입니다.

집단사고를 최소화하거나 없애기 위한 방법들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여기를 클릭하면 몇 가지 팁을 얻을 수 있습니다(트위터 친구분이 이 사이트를 알려주었죠). 그리고 지난 포스팅에서 집단사고를 '깨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를 회의에 의도적으로 참여시킨 사례를 소개한 바가 있습니다. 모두가 입을 다물고 리더의 입만 쳐다보며 침묵할 때 의도적으로 고용된 악마의 대변인이 나서서 리더의 의견이 틀렸다고 거듭 딴죽을 걸면 회의의 분위기를 통보나 지시가 아니라 토론의 장으로 만들어 갈 수 있는 효과가 있죠.



악마의 대변인이 집단사고를 방지하는 방법으로 자주 소개되지만 이 방법이 항상 '먹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악마의 대변인이 집단사고를 더욱 조장하는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찰란 니미스라는 학자는 악마의 대변인이 다수의 의견을 비판하기보다는 다수의 의견을 더욱 지지한다는 역설적인 효과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니미스는 대학생들을 데리고 실험을 했는데(역시 대학생처럼 만만한 실험 대상은 없나 봅니다. 어쨌든...), 그들에게 휴가에 대한 직원들의 요구사항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회의를 통해 방안을 세우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대학생들이 그 방안을 얼마나 잘 수립하는지 테스트했죠. 그랬더니 악마의 대변인을 참가시켰는데도 회의의 성과가 별로 나아지지 않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회의 참가자들이 악마의 대변인 역할을 맡은 사람이 누구인지 알 때도 마찬가지였고, 악마의 대변인에게 다수의 의견에 무조건 반대하는 식으로 하지 말고 자신이 원래 가진 의견을 고수하라는 지시를 내렸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요? 니미스는 악마의 대변인이 존재함으로써 오히려 건전하고 의미있는 토론이 방해된다고 해석합니다. 악마의 대변인은 일부러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기 위해 회의에 참여한 입장이기 때문에 그쪽의 반박을 인정하지 않게 됩니다. 또한 무언가 발전적인 의견을 제시하지 못하고 반대만 '일삼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그녀를 배제하고 토론하려 하죠.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악마의 대변인을 회의에 참석시켰으니 여러 의견을 다 듣어보고 결정했다는 안도감과 믿음을 집단에게 주는 부작용입니다. 악마의 대변인이 관행처럼 굳어지면 의사결정의 결과를 과신해서 다른 잠재적 위험엔 눈을 감아버리는 관성이 강화될 수 있습니다.

반대를 위한 반대 역할을 맡은 악마의 대변인은 지난 포스팅에서 든 사례처럼 집단사고에 물든 조직의 경직을 깨뜨리기 위한 초기의 장치로서는 의미가 있습니다. 모든 회의 때마다 집단사고를 방지하겠다는 목적으로 악마의 대변인을 참여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미 집단이 활발한 토론을 벌일 준비가 되어 있다면 악마의 대변인은 열띤 토론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주범이 됩니다. 그래서 니미스의 실험처럼 악마의 대변인의 반대에 다시 반대하려는 집단의 분위기가 조성되어 역설적으로 집단사고가 더 강해지고 말죠.

니미스의 실험에서 회의의 성과가 향상된 경우는 악마의 대변인이 참가한 경우가 아니라 '진정한 반대자'가 있을 때였습니다. 진정한 반대자는 왜 자신이 집단의 의견에 반대하는지 논리가 탄탄할 뿐만 아니라 대안까지 제시하는 사람입니다. 단순하게 '당신들의 의견은 틀렸다'라고 앵무새처럼 말하는 악마의 대변인보다 기탄 없이 말함으로써 열띤 토론의 장을 유도하는 사람이죠.

악마의 대변인이란 장치가 집단사고라는 얼음덩어리를 처음 깨기 위한 송곳의 역할을 하지만, 그걸 남용하는 것은 집단사고만큼이나 조직에 해롭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송곳을 자주 사용하면 무뎌지기 마련이니까요. 무엇이든 지나치면 안 하느니만 못합니다.

(* 참고도서 : '이기는 결정의 제 1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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