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노보 혁명'을 읽고...   

2008. 1. 30.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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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선, 부키

보노보가 뭐지?
일단 책 제목이 궁금증을 자아낸다. 혁명이란 말은 대충 알 것 같은데, 보노보라는 말은 도대체 무엇일까? 보노보는 한때 ‘피그미 침팬지’라고 불리며 침팬지의 아종(亞種)으로 여겨졌지만, 생태적인 특성이 침팬지와는 천양지차라서 1950년대 들어서야 별개의 종으로 분류됐다.

침팬지는 인간에게 친숙한 인상과는 달리 야심만만하고 폭력적이며 탐욕적이다. 반면 보노보는 평등을 사랑하고 낙천적인 성품을 가진 동물이다. 민망하게도 위아래는 물론이고 암수조차 가리지 않고 섹스를 즐기는 동물이기도 하단다.

인간에게는 침팬지의 공격성과 보노보의 공감(共感) 능력이 본성 속에 함께 존재한다. 인간은 그들과 같은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왔기 때문이다. 저자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기치 아래 벌여 온 금권의 정치와 승자 독식의 경제는 인간들이 지나치게 침팬지의 본성에 얽매인 결과라고 주장한다.

이를 시정하려면 우리의 본성 속에 감추어진 ‘보노보성(性)’을 일깨워야 하며, 이미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활동하고 있는 보노보들인 ‘사회적 기업들’을 주목하라고 말한다.

4섹터의 기업들
책에 의하면, ‘사회적 기업’은 벼랑 끝에 몰린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세상을 바꾸고 사회를 혁신하기 위해 돈을 벌고 돈을 쓰는 기업이다. 헌데 그들이 자선사업을 벌이는 기존의 시민단체와 무엇이 다른가? 자선사업은 비영리를 목적으로 하지만, 사회적 기업들은 영리를 추구하면서도 세상을 위해 헌신함을 추구한다는 점이 다르다.

즉 민간기업(2섹터)처럼 시장에서 경쟁하며 영리를 추구하되, 정부(1섹터)나 시민사회(3섹터)처럼 공익을 위해 수익을 사용하는 새로운 유형의 기업과 이를 지원하는 각종 조직을 의미한다. 저자는 이를 ‘4섹터’라고 규정하면서, 사회적 기업들이 새로운 경제 주체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
영리를 추구하는 것과 공익을 위해 헌신하는 것, 이 둘은 우리의 고정관념으로는 서로 융합되기 어려운 개념 아닌가? 그런 기업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아니, 과연 존재하기나 할까?

책에 소개된 4섹터의 대표적인 기업인 오로랩(Aurolab)은 우리의 선입견을 가볍게 깨뜨린다. 이 회사는 1500달러로 팔리는 보청기를 200달러에 팔거나 지불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아예 공짜로 나누어 준다. 미국에서 개당 100달러가 나가는 인공수정체를 단돈 5~10달러에 판매하기도 한다.

수요자 개개인의 지불능력에 따라 가격을 결정한다는 그들만의 원칙을 준수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익을 남기면서 사세를 확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찌 보면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결정된다는 시장경제의 원칙을 깨뜨린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을 것 같지만 오로랩은 세계은행으로부터 시장경제에 기여한 바를 높이 평가받아 상까지 받았다.

돈을 버는 것과 돈을 기부하는 것은 전혀 별개라고 생각되는가? 이 고정관념마저 깨뜨리며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사회적 기업이 캘버트 재단이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올바르게 일하는 ‘착한 기업’에 투자하고 그 이익을 투자자와 비영리 단체에 일정 비율로 배분하는 금융상품을 판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돈을 좀 덜 버는 대신에 빈곤층을 위한 대출사업, 주택보급사업 등을 위해 기부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투자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돈이 아니라 실천하려는 의지가 중요
인터넷으로 사진 올리는 법을 묻는 꼬마 은비에게 “그런데 이거 배워서 뭐 하게?”라고 하니, 한껏 웃는 표정으로 은비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엄마가 내 얼굴 볼지도 모르잖아요.” KT의 CF에 나오는 장면이다. KT의 ‘IT서포터즈’ 사업은 보육원에 사는 은비처럼 소외된 아동들에게 IT를 교육함으로써 그들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미약하나마 국내에서도 몇몇 기업들이 보노보 혁명에 동참하고 있지만, 아직은 재정도 빠듯한데 팔자 좋게 사회적 책임 따위에 낭비할 돈이 없다고 일축하는 기업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런 기업들의 푸념에 동의하는가? 빈곤국의 아이들을 위해 도서관 사업을 하는 ‘룸투리드(Room to Read)’의 존 우드는 단호하게 ‘아니다’라며 고개를 저을 것이다. 250달러면 수십 명의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줄 수 있고 2,000달러면 도서관을, 1만 달러면 학교를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돈이 아니라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라고 그는 말한다.

기업의 존재 목적을 다시 생각하다
기업의 존재 목적은 뭐니뭐니해도 이윤 창출과 극대화가 최우선이라는 침팬지적 정의에 사로잡혀 있는가? 빈곤국의 아이들을 양성함으로써 이들이 절대 빈곤층에서 중산층으로 상승하면 그 나라의 경제가 살아나고 결국 시장 규모가 커지기 때문에 이윤 확대에 도움이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희망을 선물 받은 수많은 ‘은비’들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성장한다면 천군만마 부럽지 않은 든든한 후원군이 될 것임은 자명하다.

이 책을 통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구별없는 지속 가능한 경제 패러다임을 실현한다는 것 또한 기업의 존재 목적이 되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리고 ‘보노보 경영’을 통해 사회적 덕망을 함께 얻음으로써 지속 가능한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나눔과 배려는 가장 효과가 크고 오래 가는 투자이기 때문이다.

앙뜨레프레너 오블리제!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의식을 절감하면서도 그 실천방법을 모호하게 여기는 경영자라면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는 이 책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소개된 사례 모두 외국의 것이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우리 현실에 맞지 않는 먼 나라 이야기 아니냐’는 생각을 갖게 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직업이 기자인 저자로서도 외국의 사례와 어깨를 견줄 만한 진정한 의미의 보노보를 국내에서 찾기 어려웠다는 반증일지도 모르겠다.

책 말미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하면 좋고 안 해도 그만인 선택사항이 아니라, 기업의 목적이 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는 대목이 나온다. 제도화뿐만 아니라 의식화도 병행돼야 한다. 노블리스 오블리제! 알다시피, 신분이 높은 사람이 가져야 할 도덕적 의무를 말한다.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 의식과 의미 있는 행동을 위해 이제 이런 말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앙뜨레프레너 오블리제(Entrepreneur Oblige)!

유정식 (인퓨처 컨설팅 대표, 교보문고 북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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