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스타벅스를 자주 찾는 이유   

2009. 6. 16.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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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스타벅스에 자주 갑니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시간보다 그곳에서 커피 한 잔을 홀짝거리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한량 내지는 불한당처럼 들리겠지만, 그렇다고 노는 건 아닙니다. 그곳에서 저는 몇 군데 전화를 하고 강의 준비도 합니다. 책을 읽기도 하고 눈이 아프거나 졸리면 인터넷 서핑으로 달랩니다. 어쩌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즉흥적으로 글을 쓰기도 하죠. 스타벅스는 또다른 사무실인 셈입니다.

의자는 사무실의 것보다 작고 딱딱해서 시간이 좀 지나면 엉치뼈가 배기고 허리가 당깁니다. 사무용 책상의 5분의 1이나 될까말까한 원형 테이블은 노트북과 책과 필기구를 올려 놓기에도 비좁습니다. 행여나 커피를 엎지르진 않을까 손놀림 하나하나가 조심스럽지요. 불편하지 그지 없습니다.

게다가 좀 시끄럽습니까? 커피 머신이 연신 원두를 갈아대는 소리. '콜링합니다~'를 외치는 점원 목소리. 좁은 테이블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커플이 있는가 하면, 왁자지껄한 대화 끝에 늘 박장대소를 하는 아주머니 부대. 스피커가 찢어질 듯 쿵쾅거리는 음악까지 듣노라면 온갖 소음이 융해된 터널 속에 들어앉은 듯한 착각까지 듭니다. 

스타벅스에 앉아 이렇게 엉터리 그림을 그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불편하고 시끄러운 스타벅스에서 곧잘 책이 읽히고 글이 써지니 참 이상합니다. 책 내용이 쏙쏙 들어와 속독이 가능하고 시간당 써내는 글자수도 사무실에 있을 때보다 더 많지요. 조용한 사무실에서는 시계 초침처럼 작은 소리도 거슬리는데, 스타벅스에서는 자식 자랑하는 아주머니의 우렁찬 목소리에도 무감각해집니다. 

간혹 그 자랑 소리가 도가 지나쳐 책읽기와 글쓰기를 멈칫하기도 하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왜 그럴까요? 누군가가 심리학, 뇌과학, 철학, 사회학 등 학문적인 관점으로 이런 모순적인 '조화'를 설명할 수 있거나 이미 설명했겠지요.

그들의 결론과 일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전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스타벅스는 타인들과 삶을 공존한다는 느낌을 강화하고 동시에 군중 속의 고독을 극대화함으로써 자아를 향해 집중케 만드는 일종의 장치는 아닐까요? 저처럼 혼자서 자주 스타벅스를 들르는 사람은 그곳에서 왁자지껄한 소음을 듣고 앉았노라면 혼자임에도 혼자가 아니라는 안락함을 느낍니다.

그렇지만 스타벅스는 다른 테이블에 앉은 타인들과 쉽게 교류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은 아닙니다. 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기에 딱 좋은 공간이죠. 이율배반적이지만, 혼자가 아님을 알면서도 고독을 동시에 느낍니다. 이런 불협화음 같은 하모니가 내면의 세계를 확장시키고 책읽기나 글쓰기가 술술 풀리도록 만든 집중력의 원천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하필 스타벅스냐구요? 스타벅스와 쌍벽을 이루는 커피빈(일명 콩다방)이 있고, 요즘 영역을 확대 중인 엔젤리너스, 톰앤톰스 등의 커피 하우스도 있는데 왜 유독 스타벅스만을 예찬하는지 궁금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스타벅스의 커피맛이 특별하기 때문은 아닙니다. 제 입이 좀 저렴한지라 맛 차이를 별로 못 느끼겠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커피빈엔 노트북을 연결할 콘센트를 찾기 어렵습니다. 좀 비싼 커피값은 그러려니 하는데 친화적이지 않은 모바일 네트워킹 환경이 아쉽습니다. 노트북을 자주 이용하는 제겐 부적격 장소죠. 제가 자주 가는 스타벅스 매장은 구석구석 콘센트가 제법 많습니다. 게다가 무선 인터넷을 공짜로 쓸 수 있어서 좋습니다.

톰앤톰스는 흡연자를 더 많이 배려한 인테리어 설계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통유리로 된 칸막이가 흡연자와 비흡자를 가르는 내부 구조가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더군다나 흡연자 좌석은 텅텅 빈 반면 비흡연자 자리는 붐벼서 그냥 나와버린 '안 좋은 기억'이 몇번 있습니다. 편견일까요? 다른 브랜드 매장은 거의 가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

스타벅스가 처음 등장했을 때와 달리 지금은 브랜드가 진부하게 느껴지는 게 사실입니다. 인테리어와 메뉴의 화려함이 다른 브랜드보다 못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런 스타벅스만의 빈티지가 푸근하게 느껴집니다. 파스쿠치란 커피 하우스는 인테리어가 강렬하고 세련되어 젊은이들이 자주 찾는 모양이지만 스스로가 이물(異物)이 된 듯하여 그곳에서 오랫동안 머물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습니다.

올해 초에 나온 제 책('시나리오 플래닝')의 3분의 2는 집 근처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도 자주 간 탓에 따로 주문하지 않아도 "숏 아메리카노~"라고 콜링할 정도가 됐었죠. 서너 시간 앉아 있어도 뭐라 하지 않고, 소란한 분위기 속에서 업무와 휴식을 겸할 수 있는 공간인 '별다방'을 앞으로도 오랫동안 애용할 듯 합니다.

* 본 포스트는 스타벅스 홍보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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