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함께 한 투철한 실험정신?   

2009. 5. 13. 11:20
반응형

어제 집에서 혼자 점심을 먹을 일이 생겼다. 혼자 먹는 밥이 적적하여 뉴스나 볼 요량으로 평소엔 잘 안 보는 TV를 틀었다. 틀고 보니 채널이 EBS였다. 아들이 가끔 EBS에서 방송하는 어린이 프로그램을 좋아하기 때문이리라.

역시 EBS답게 여러 명이 어린이들이 나와서 놀이 비슷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오락 프로그램이겠거니 짐작을 하고 YTN으로 채널을 옮기려고 하는 찰나, 화면에 뜨는 단어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도덕성

화면 하단에 뜬 프로그램 타이틀을 보니, '다큐 프라임-아이의 사생활-제2부 도덕성'이었다. 도덕성의 근간을 이루는 요소들이 무엇인지 다양한 심리학적 실험으로 알아보는 프로그램이었다.

볼수록 빠져 드는 프로그램이었다. 도덕성이 높은 어린이와 평균인 어린이들을 구분하여 각각 어떤 행동 특성을 보이는지 비교하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프로그램은 도덕성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주장을 내놓는다.(프로그램 중간부터 봐서 그 앞의 내용은 모르겠다.)

첫째, "도덕성은 타인의 입장을 인지하면서 발달한다"
둘째, "도덕성이 높은 아이는 자제력이 높다"
셋째, "도덕성은 권위, 강압, 경쟁 압박 등에 의해 손상되기 쉽다"

첫번째 주장을 위해, 프로그램은 4살 짜리 아이와 7살 짜리 아이를 각각 등장시켜서 비교실험을 행했다. 다음과 같이 뿡뿡이 인형이 보이게 아이를 앉히고 뿡뿡이의 등 뒤에 곰 인형을 앉힌다.

아이-->    <---뿡뿡이       <-- 곰

선생님이 묻는다.         "지금 뿡뿡이의 무엇이 보이니?"
아이가 답한다.            "뿡뿡이 눈이요."
선생님이 또 묻는다.     "그러면, 곰 인형은 뿡뿡이의 어디를 보고 있을까?"
아이가 답한다.            "뿡뿡이 눈이요."

4살 짜리 아이는 곰 인형도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바라본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입장을 알아차리기엔 아직 어리기 때문이다. 반면 7살 짜리 아이는 "뿡뿡이 등이요" 혹은 "뿡뿡이 꼬리요"라며 곰 인형의 관점을 말할 줄 안다. 타인의 관점과 입장을 이해하는 능력이 도덕성의 출발이라고, 그 능력은 자라면서 획득된다고 프로그램의 화자는 말한다.

"흥미로운 실험인 걸?"  나는 저녁 때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들에게 프로그램에서 했던 실험을 재현해 보았다. 자신이 실험 대상이 된 줄 모르고 아들은 아빠가 재미난 게임을 하자고 생각했는지 연신 싱글벙글이다. 프로그램처럼 두 개의 인형을 위치시킨 다음에 동일한 질문을 던지니, 아들은 타인의 관점에서 대답을 했다. 나이가 우리나라 나이로 7살이니 당연한 답변이었지만 "야, 우리 아들 다 컸네"라며 볼을 살짝 꼬집어 주었다.

테스트를 더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오른쪽, 왼쪽을 맞히는 게임을 해보면 어떨까? 아들과 나는 서로 마주 앉았다. 그런 다음 이렇게 게임을 진행했다.

나      :   "너의 오른손을 들어봐"
아들   :  (오른손을 번쩍 든다)
나      :   "너의 왼손을 들어봐"
아들   :  (역시 왼손을 번쩍 든다)
나      :   "아빠의 오른손이 무엇이게?"
아들   :  (0.5초 정도 주저하다가 내 오른손을 정확히 짚는다)
나      :   "딩동뎅~~"

이번엔 좀 어렵게 해봤다. 내 두 손으로 "X"자를 만든 다음에 무작위적으로 "아빠의 오른손(왼손)이 무엇이게?"라 질문했다. 아들은 상당히 재미있어 하면서 척척 맞혔다. 팔을 꽈배기처럼 꼬는 나의 고난도(?) 자세에도 손이 어느 쪽 팔에서 시작됐는지 죽 살펴보면서 잘도 맞혔다. (팔을 꼬는 자세, 생각보다 무지 어렵다. -_-; )

내 기억으로는 불과 1~2년 전만 해도 타인의 오른쪽/왼쪽을 구분하지 못했는데 "이제 너의 도덕성도 쑥쑥 자라는 중이구나!" 팔불출 아빠처럼 나는 소박하게 기뻤다.

프로그램 말미에 어른들의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따라한다는 실험 결과를 보았다. 어른은 아이들의 거울이란 말을 실감했다. 내가 도덕적으로 행동해야 내 아들의 도덕성도 건강해지리라 생각하니 꽤나 반성이 된다. 조심해야겠다.

반응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