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싫어하는 9가지 유형의 책   

2009. 3. 25.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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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머무는 건 참 힘든 일이다. 시간을 보낼 요량으로 지하에 있는 서점에 가서 이책 저책 들춰봤다. 병원 구내 서점인 탓에 건강 관련 서적이 메인이고 기타 장르의 책들은 베스트 셀러(혹은 출판사가 엄청나게 미는 책)나 '가벼운' 읽을거리 위주로 진열돼 있었다. 내 취향이 아닌 서점이었으나 유일한 구내서점이니 별다른 선택이 없었다.

서가에 놓인 책들의 제목들을 쭉 훑어봐도 딱히 손이 가는 책이 없었다. OOO재테크, OO의 기술, OO하는 습관... '휴우, 읽을 게 없군. 여기서 '종이뭉치'들과 눈싸움하는 것보다 바람 쐬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손이 가지 않는 책들의 특징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니 다음과 같다. 내가 좀 까탈스럽나? ^^

1. 저자 얼굴이 표지 전체를 장식한 책 
위인이나 유명인의 얼굴이 아니라, 저자 자신의 얼굴이 '환하게' 웃고 있는 책은 읽기가 꺼려진다.  내용이 아닌 유명세로 책을 팔려는 의도 같아서인데, 경험상 이런 책의 대부분은 함량 미달이다. 그 저자가 비록 저명한 학자일지라도 마찬가지인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책이 최근에 나온 엘빈 토플러 책이다.

2. 성공한 제목을 패러디한 책
어떤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면, 그 제목은 다른 책에 여러 번 패러디 된다. '시크릿'이 뜨니까 OO의 시크릿, 시크릿 OO와 같은 아류가 판을 친다. 'OO처럼 OO하고, OO처럼 OO하라', 'OOO 콘서트'식의 제목도 우후죽순이다. 이렇게 제목을 패러디하는 책의 대부분은 히트작의 성공에 기대어 판매를 늘리려 한다. 소수를 제외하고, 내용은 뒷전이므로 손이 가질 않는다.

3. 인터뷰나 토론 내용을 모은 책 
어떤 주제에 대해 인터뷰했거나 두명 이상의 화자가 나와 토론을 벌인 내용을 기록해서 책으로 펴내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나는 페이지를 펼쳐 보고 그런 구성임을 발견하면 흥미가 싹 가시면서 책을 내려놓게 된다. 왠지 잘 모르겠지만, 그런 책은 오랜 시간을 공들여 쓴 게 아니라, 숙성되지 않는 생각을 단시간에 걸쳐 쏟아부은 것 같아서다. 촘스키 책 중에 이런 책이 몇권 있는데, 별로 달갑지 않다.

4. 여러 저자가 한 챕터씩 나눠 쓴 책
2명의 저자가 공저한 책이라면 모를까, 그 이상 사람들이 한 챕터씩을 나눠 쓴 책이라면 나에게는 기피대상에 해당된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썼다 하더라도, 각자에게 주어진 지면이 적어 깊이있는 내용이 전개되기 어려울 거란 생각 때문이다. 선입견인지 모르겠지만, 내 취향은 아니다.

5. 한 페이지에 글자수가 적은 책
어떤 책을 보면 글자보다 여백이 많다. 책 두께가 적어도 2cm는 넘어야 폼이 나니까 글자 크기를 키우고 줄수를 줄이고 종이도 쓸데없이 두꺼운 것을 쓴다. 게다가 어떤 책은 양장까지 해서 내용도 별로 없는데 두껍게 보이려고 위장하기도 한다. 시가 아닌 산문은 여백의 미를 추구해서는 안된다. 분량이 안 나온다면 나올 때까지 고민한 후에 책을 써야 한다. 개인적으로, 적어도 책이라면 300페이지(한 페이지 줄수 23줄 기준)는 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6. 속편으로 기획되어 나오는 책
베스트 셀러가 되고 나서 'OOO  2' 형태의 제목을 달고 나오는 책들, 이런 책들도 내 손은 거부한다. 첫번째 책의 성공에 기대 볼려는 심산인데, 대표적인 책이 '설득의 심리학 2'이다. 치알디니가 이 사실을 알면 대단히 노할 일이다.

7. 정치인들의 책
정치인들은 선거 때만 되면 책을 잘도 낸다. 정치하기 바쁜데 언제 집필을 하셨을까 싶다. 대대적으로 출판기념회를 벌이면서 '역작'이라고 자화자찬하다가 끝날 책들이다. 내가 지지하는 당의 정치인이든 그렇지 않든 정치인들이 쓴 책은 공손히 거부한다.

8. 자기계발서 또는 처세 책
한때 자기계발서 광풍이 불었다. 지금은 좀 잠잠한데, 나도 한때 자기계발서를 써볼까 하는 유혹에 빠졌다가 지금은 회개(?)중이다. 극소수의 책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자기계발서들은 동어반복이 많고 자꾸 재생산된다. 당신의 책꽂이에 자기개발서가 많다면, 아마 당신의 자기계발은 요원하다. 자기계발됐다면 그런 책들이 더이상 필요 없어야 하니까 말이다. 나는 서점의 처세 코너는 언제나 지나쳐 버린다.

9. 재테크 책
'돈을 따라가면 돈이 안 붙는다'는 말이 있다. 열심히 하다보면 돈이 따라오는 법이다. 그래서 재테크 책을 읽을 시간에 삶과 영혼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책을 읽는 게 천배 만배 낫다. '대한민국 20대, 재테크에 미쳐라?' 내가 기억하는 제목 중 최악이다.


이상이 내가 싫어하는 책의 유형들이다. 혹 출판사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이 글을 읽고 분개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냥 내 취향이 그렇다는 말이니 양해 부탁 드린다.

여러분은 어떤 류의 책에 손이 가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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