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학 몰라야 성공이 보인다?   

2008. 1. 1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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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한국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경영학 몰라야 성공이 보인다?

'비경영 분야서 혁신기술·아이디어를 찾아라' 세계적인 바람
CEO들, 인문·과학·예술적 상상력 키우는 서적·강의에 큰 관심



정보기술(IT)기업의 대표 A 씨는 요즘 인문학 서적에 푹 빠져 지낸다. 그는 마케팅서적에서 신선한 아이디어나 차별화 전략을 꾀하는데 도움될 만한 지식을 얻은 적이 없다고 말한다.

대신 깊이 있는 지식과 인간사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는 인문학적 소양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데 유용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한동안 직원들 문제로 골치를 썩었던 홍보대행사 대표 B씨는 얼마 전 인터넷서점에서 역사책과 소설책 십여 권을 주문했다.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사람’이라는 것을 터득한 그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삶의 지혜를 얻는 데는 얄팍한 지식과 논리로 포장된 자기계발서나 조직관리에 관한 경영서적보다 역사책이나 소설책이 더 제격이라고 판단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경영인들이 경영전략이나 마케팅, 고객만족보다 인문학 관련 서적을 선호하는 경향이 세계적으로 두드러진다고 전했다.

이 같은 추세를 반영하듯 경영자들을 겨냥한 인문학 주제 책이 속속 출간되고 있다.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정진홍 저, 21세기북스)는 경영이 인문학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정진홍 박사가 삼성경제연구소에서 CEO를 위한 인문학 조찬특강에서 진행한 강의를 모은 것이다. 오늘날 모든 분야의 경영에서 가장 시급하고 긴요한 것은 통찰의 힘이며, 그 통찰의 힘을 기르는데 최고의 자양분이 바로 인문학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는 로마제국의 쇠망사를 통해 역사 속 흥망의 이야기가 주는 통찰의 힘을 끌어내는가 하면, 문화인류학자인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가 왜 경영적으로 의미 있고 중요한지도 풀어낸다.

또, 심리학자 미하일 칙센트미하이의 창의성 이론 등을 토대로 창의적 사고의 과정과 그 해법을 담고 있다.

비 경영 분야로 시야를 넓혀 경영의 해법을 찾고, 블루오션을 창출하려는 움직임은 경영인들의 지적 관심사를 인문학 뿐 아니라 문화, 예술, 과학 등 전방위 분야로 돌려 놓고 있다.

‘경영, 과학에게 길을 묻다’ (유정식 저, 위즈덤하우스)는 과학의 원리와 과학적 가설들로부터 경영학적 의미를 추출해낸 책이다. 저자는 책에서 수학, 물리학, 생물학 등 ‘네트워크 과학’이 조직설계와 변화관리, 성과관리, 갈등관리에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경영자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수학적 오류를 예로 들기도 한다. 확률에 대한 무지가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벤치마킹’에 집착하게 한다는 것이 그 한 예다.

저자 유정식 씨는 “경영 관련 도서와 논문 리스트를 훑어보면 학문의 텍스트가 곤궁해지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며 “경영학은 기업환경의 변화 걸음을 뒤에서 겨우 따라잡고 있으며, 새로운 화두를 던지지 못하고 현상을 설명하는 데에만 급급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것이 오늘날 경영학의 현실이기 때문에 사회과학이나 인문학은 물론이고 생물학이나 유전학 등 경영학과 전혀 상관없다고 치부해버리는 과학의 체계와 관점 속에서 경영의 의미를 탐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몇 년 전부터 불고 있는 독서경영 붐에서도 이제 경영학서적보다 인문학과 과학 등 다른 분야의 서적을 탐구하는 경향이 짙다.

한국생산성본부에서 주최하는 ‘미래경영 CEO북클럽 조찬모임’(www.ceobook.or.kr)에서도 경영관련 강의를 제치고, 문화와 생물학, 심리학강의가 경영자들로부터 인기가 높다.

생물학자인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의 ‘세상을 읽는 새로운 시각-통섭’이라는 주제의 강의도 인기 강좌 중 하나다. 최 교수는 “기업의 최고 경영자들이 경영과 상관 없는 개미와 침팬지 얘기를 무척 귀 기울여 듣는다”며 “생물학자인 나에게 밥을 먹자는 요청이 쇄도하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연세대 경영대학원 신동엽 교수는 “요즘 연세대 경영대학원에서 첫 번째로 내세우는 것이 인문학적인 상상력을 가진 경영자”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21세기의 경영 패러다임이 과거 대량생산시대와 달라 기계처럼 물건을 만드는 기능이 아니라 창의력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기존의 산업, 기술, 유통과 시장의 경계에 구애 받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경쟁양상이 전개되는 초경쟁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

따라서 기존에 경영의 효율을 높이는데 적용됐던 ‘6시그마’ 시스템만으로는 창조경쟁에서 새로운 경제우위를 창출할 수가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지난해 한 CEO대상 강연에서 경영인들에게 동기부여를 하기 위해 ‘향수’라는 소설을 읽게 했습니다. 정통 경영학에서 가르치는 동기부여 방식과 전혀 다른 방법이었죠. 그런데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책을 읽고 난 CEO들이 동기부여와 함께 경영의 문제를 보다 심도 깊게 이해하게 됐다며 환호하더군요.”

혁신적인 기술과 아이디어로 무장한 신제품을 보면 경영학적 사고의 틀에서 탄생할 수 없는 것들임을 알 수 있다.

삼성전자가 내놓은 신제품 TV ‘보르도’는 문화, 그 중에서도 스토리텔링 기법에서 영감을 받았다. TV를 와인잔 모양으로 만든 것부터가 정통 경영학의 고정관념에서 탈피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 삼성전자 팀의 설명이다.

이처럼 최근 기업에서 국내외 유명예술가나 작품을 소재로 상품의 철학을 광고하거나 음악회를 개최하는 등 문화콘텐츠를 비즈니스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컬처노믹스’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지 않은 경영인들 중에 경영학의 틀에서 벗어난 참신한 안목을 가지고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는 사례도 점점 증가추세다. 의대를 졸업하고 컴퓨터 바이러스 연구소를 설립한 안철수 회장, 대학에서 중세역사와 철학을 전공한 칼리 피오리나 전 휴렛패커드 사장을 비롯해 문학과 연극을 전공한 월트디즈니사 마이클 아이스너 회장 등이 잘 알려진 인물이다.

이런 이유로 일부 경영학자나 경영계에서 “이제 경영학을 몰라야 성공한다”는 말까지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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