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상 임상옥에게서 배우는 경영의 기본   

2008. 7. 29.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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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에 나는 ‘경영유감’이라는 책을 냈다. 경영기법의 본질을 망각하여 혁신을 위한 혁신에만 몰두하지 말고, 경영의 기본을 다시금 되돌아 보자라는 취지로 썼다. 책 제목을 다소 도발적으로 지은 탓인지 몇몇 방송사에서 책 소개를 부탁한다며 출연을 요청받았다.

작가들이 사전에 건네주는 질문들은 거의 비슷했다. 책을 쓴 동기와 무엇에 유감이 있기에 제목이 ‘경영유감’이냐는 질문은 항상 들어 있었다. 그리고 ‘경영의 기본으로 돌아가자’라는 카피문 때문이었는지 도대체 경영의 기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도 매번 받았다. 경영의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취지는 알겠는데, 경영의 기본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어떻게 말할 수 있냐는 것이었다.

나는 이 질문에 곤혹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책 소개글에 경영의 기본으로 돌아갈 것을 호기롭게 주장했던, 명색이 저자라는 사람이 경영의 기본을 한마디로 표현해 달라는 질문에 말문이 막혀 버렸으니, 스스로가 민망했다.

책의 각 장을 보면 경쟁, 미래, 조직, 사람이라는 주요 경영요소별로 경영자가 지켜야 할 기본사항들을 요약해 놓았다. 그러나 그것들을 아울러서 한마디의 문장으로 나타내지 못한 것이 실책이었다. 방송 진행자나 독자들이 머리를 갸웃거릴 만하다. 경영의 기본이란 무엇일까, 나는 한동안 꼼짝없이 고민에 빠져 버렸다.

숱한 명제들이 머리 속을 어지럽히고 있을 때, 서가에 꽂혀있는 최인호의 소설 ‘상도(商道)’가 눈에 들어왔다. 알다시피 ‘상도’는 거상(巨商) 임상옥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으로서 드라마로도 방영된 적이 있다. 드라마를 본 사람이라면 자주 나오던 대사가 무엇인지 알 것이다. 바로 ‘돈을 남기는 게 장사가 아니다. 사람을 남기는 게 장사다.’ 란 말이다. 어찌 보면 굉장히 순진하면서도 뜬구름 잡는 말인 것 같지만, 순간 나는 그 말이야 말로 경영의 기본을 한마디로 정의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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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연합뉴스


‘사람을 남긴다’는 말을 곱씹어 보면 시대를 앞서 간 자의 혜안이 느껴진다. 첫째 눈앞에 보이는 이윤에 급급하지 않고 장기적인 비전에 집중하는 것이 경영의 기본임을 알려준다. 매일 매일의 주가 등락에 돈을 거는 데이트레이더가 워렌 버핏 같은 투자의 귀재는커녕 결국 ‘개미’로 남을 수밖에 없듯이, 비전조차 없이 되는대로 눈앞의 이득을 좇는 유행을 경계하란 뜻이다.

소위 ‘먹튀’ 작전을 구사하고자 하는 기업이 아니라면, 단기적 영리에 온갖 역량을 쏟는 것은 기업생명을 단축시키는 행위다. 가끔 이런 소리를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어디 좋은 사업 아이템 하나 없냐? 한탕 크게 해서 회사 매각하면 정말이지 대박일 텐데 말이야.’ 그만 꿈 깨시라. 운이 좋아 한탕 크게 벌지도 모른다. 그러나 곧 망할 것이다. 한탕의 유혹에 쉽게 빠지기 때문이다. 고객이 바보가 아닌 이상, 철저히 외면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적어도 남을 속여 돈을 벌지 말라는 윤리경영의 핵심을 ‘상도’는 이야기한다. ‘경영유감’에서 나는 동의도 없이 부가서비스 요금을 부과한 모 통신사를 비판했다. 겉으로는 윤리경영을 내세우면서도, 고객이 속아 넘어가 줄 것을 기대하는 마케팅 전술과 ‘싫으면 사지 말라’며 당당하기까지 한 오만불손한 태도는 이미 여러 기업들의 비뚤어진 표상이다.

나는 거대한 독과점 기업들이 점점 많아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부(富)의 양극화 현상처럼 기업의 양극화도 ‘경쟁의 효율화’라는 탈을 쓰고 심화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자동차, 가전, 건설, 방송 등 여러 산업영역에서 독과점이 완성되었거나 진행 중이다. 알다시피 독과점의 가장 큰 폐해는 기업의 전횡이다. 모 자동차업체의 경우, 노사분규로 인한 영업손실을 자동차 가격의 5% 인상과 협력업체로부터 공급 받는 부품가격의 4% 인하로 충당하려는 방침을 버젓이 드러내놓고 있으니 말이다. 정말이지 소비자를 봉으로 아는 처사다.

셋째, 좋은 인재들이 경영의 핵심이라는 뜻을 '상도'는 시사한다. 이는 위대한 경영자 잭 웰치의 ‘인재에 집중하라’는 경영철학과 기저를 같이 한다. CEO 인터뷰 기사에 큰따옴표로 인용돼 매번 나오는 문구는 인재관리가 핵심이라는 말이다. 인재관리에 힘을 쏟는 CEO만 인터뷰에 모시는 것일까? 그러나 진정으로 인재관리를 최대 관심사로 여겨 실천에 옮기는 CEO는 미안한 말이지만 극히 적다.

생산 및 판매실적이 어떤지 월단위, 주단위로 회의를 열어 점검하는 CEO는 많아도, 인재를 직접 관리하겠다고 그 깨끗한 손에 땀을 내는 CEO는 별로 찾아볼 수가 없다. 인재관리는 인사팀의 몫이라며 인사팀장을 닦달한다. 닦달하는 것을 가지고 대외적으로는 인재관리가 최대관심사라며 목을 세우는 것이다.

방송진행자의 질문 때문에 경영의 기본이란 무엇인지 한참 고민했다. 그 결과로 ‘사람을 남기는 게 장사다.’ 라는 정의(定義), 영원히 가치가 변하지 않을 경영의 정의(正意)를 만날 수 있었다. 이 말을 벽에 붙여 놓고 경영의 기본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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