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는 몰락을 알리는 슬픈 서곡이다   

2008. 7. 8.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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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멕시코와 과테말라를 중심으로 찬란한 꽃을 피웠던 마야 문명이 몰락한 직접적인 원인은 스페인 정복자인 코르테스의 침략 때문이 아니다. 문명의 몰락은 이미 서기 800년 경에 시작되었다. 한때 적게는 300만, 많게는 1400만 명으로 추정되는 인구로 북적거렸지만 코르테스가 1524년 즈음에 마야 문명의 중심지인 '페텐'에 도착했을 때 인구는 고작 3만 명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코르테스


마야 문명이 몰락한 원인은 바로 '풍요' 때문이었다. 풍요는 자연스럽게 인구의 증가를 낳았다. 인구가 증가하자 더 많은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사람들은 숲을 파괴해 농지를 개간하기 시작했다. 고고학자 데이비드 웹스터의 말처럼 "지나치게 많은 농부가 지나치게 많은 땅에서 지나치게 많은 곡물을 재배했다."

풍요는 또한 사치를 낳았다. 마야에는 건물 벽에 석고를 바르는 풍습이 있었다. 마야의 왕들은 사원과 궁전을 치장하기 위해서 경쟁적으로 석고를 두껍게 바르기 시작했다. 석고를 만들려면 용광로에서 석회석을 녹여야 하는데, 이것때문에 막대한 양의 소나무가 땔감으로 쓰였다.

농지와 땔감 확보를 위해 삼림은 무차별적으로 파괴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 마야 문명을 파국으로 이끌었다. 숲이 사라지자 침식 작용이 심해져서 토양 속의 양분이 빗물에 씻겨 내려가고, 그 때문에 공들여 개간한 농지가 얼마 가지 않아 척박해지고 말았다. 또한 숲의 척박한 토양이 밑으로 흘러내려간 탓에 원래 비옥했던 골짜기와 평지의 토양까지 못쓰도록 만들었다. 게다가 삼림 파괴 때문에 강수량이 줄어들어 오랜 기간 가뭄에 시달렸다.

결국 곡식 수확량은 지속적으로 감소했고 식량을 쟁탈하기 위한 피비린내 나는 내란이 시작되었다. 전쟁은 식량의 급감을 부채질하고 말았고, 배고픔과 전쟁 때문에 수많은 주민들이 죽음으로 내몰렸다. 이것이 마야 멸망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마야 뿐만이 아니다. 로마 제국의 몰락은 세계 정복의 위업을 달성하자마자 시작되었고, 해가 지지 않을 거라 여겨진 영국은 빅토리아 전성기가 끝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몰락했다. 풍요해질수록 변화를 추구해야 할 이유가 적어진다. 변화하지 않으면 외부적인 요인에 대처할 힘을 잃기 때문이다. 대처하지 못하면 풍요는 곧 스러지고 몰락의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많은 역사가 증명하듯, 풍요는 곧 몰락의 시작이다.

풍요 = 몰락의 시작


역사상 가장 빨리  포브스의 500대 기업에 랭크된 회사는 애플 컴퓨터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악하기 짝이 없으나 당시로서는 꽤 괜찮은 성능을 자랑하던 PC인 '애플 II'가 갑작스러운 성공의 견인차였다. 1976년에 9만 5천 달러에 불과했던 매출액은 1982년에 10억 달러를 초과했다. 고작 6년 만에 10,000 배가 넘는 성장을 한 애플 컴퓨터는 1983년에 포브스 500대 기업 41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고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는 젊은 갑부가 된다. 이때가 애플의 가장 풍요로웠던 전성기였다.

그러나 풍요는 몰락의 시작이라는 공식이 애플에게도 여지없이 들어 맞았다. 1982년에 '타임'지의 표지 인물로 오른 스티브 잡스는 3년 뒤에 자기가 만든 회사에서 쫓겨날 거라 예상했었을까? 1982년에 정점을 찍은 애플의 시장점유율은 그때까지 숨죽이고 있던 코끼리 IBM에 의해 서서히 잠식 당하고 그 뒤에 무수히 쏟아진 IBM호환 PC 때문에 애플은 도산 위기에까지 몰리고 만다.

10억 달러 이상의 적자로 허덕이던 애플이 1997년에 쫓아 낸 스티브 잡스를 다시 받아 들임으로써 그 해 1억 달러 흑자라는 반전에 성공하며 화려하게 부활했지만, 풍요가 몰락의 시작임을 회사의 역사가 증명하는 대표적인 회사임에는 틀림없다(지금 잘 나가고 있으니 뭐가 문제냐는 말은 하지 말자). 

"쇠퇴가 임박했음을 조기에 가장 잘 표시해 주는 것은 우량 경영에 대한 표창장들이다.한 기업이 랭킹 순위 1위에 오르면 이것은 문제가 다가오고 있다는 증거다. 오늘의 수퍼스타는 내일 깊이 추락할 수 있는가장 좋은 기회를 가지고 있다"고 헤르만 지몬은 경고한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우습게 넘길 말이 아니다.


풍요는 마약과도 같아서 중독될수록 더 많은 '양'을 원한다. 국민들을 장기적으로 어떻게 다스릴지 고민하지 않고 석고를 얼마나 두껍게 바를 수 있는지와 같이 사소한 경쟁에 마야의 왕들이 집착했듯이 풍요는 마약처럼 판단력을 흐리게 만든다. 작년(2007년)에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폭행 사건 역시 풍요가 그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든 것이다.

아마 이와 비슷한 상상을 할지 모르겠다. "멋드러지게 꾸민 개인 전용 사무실에서 일한다면 아이디어가 더 많이 생기고 일도 열심히 할 수 있을 텐데...장서가 가득한 나만의 서재가 있다면 까짓 멋진 작품 수십 편은 쓸 수 있을 텐데..." 나도 가끔 이런 공상에 젖곤 한다. 그러나 좋은 환경이라는 풍요는 좋은 아이디어와 높은 성과를 담보하지 않기 때문에 끝도 없이 흘러가는 공상에 브레이크를 건다.

풍요할수록 변해야 할 이유를 상실하고, 상실된 목표의식은 자신을 게으름으로 몰고 간다. 게으름은 '내가 아무것도 못하고 있구나'라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만드는데, 풍요로운 생활은 자신을 추스르도록 만들기보다는 술이나 오락처럼 방탕한 방식으로 죄책감을 해소하도록 한다. 그러므로 풍요로움에 대한 상상은 부질없는 '환상'이다. 풍요는 몰락의 시작을 알리는 슬픈 서곡이다.

스스로 풍요롭다고 생각하는가? 갑작스러운 행운과 성공이 찾아 왔는가? 만일 당신이 행운아라면 축하의 악수를 건네기 전에 이 말을 해주고 싶다. 풍요를 경계하고 보다 건설적인 목표를 세우고 그것에 매진하길 바란다. 그런데, 이런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인간은 더 많은 걸 항상 추구하는 동물이라 웬만해서 만족하는 법이 없고 또 행운아들은 매우 적은 법이기 때문이다.

풍요로움에 대한 환상에 빠져 있는가? 떵떵거리는 부자가 되고 싶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싶은가? 이런 사람은 매우 많을 것이다. 만일 당신 그 중 한 사람이라면, '내가 풍요롭지 않아서 나는 잘 하기가 힘들어'란 패배감에 당신은 아마 젖어 있을지 모른다. 혹은 '풍요로워진다면 그때 잘 할 수 있을 거야'라고 자신의 처지와 무능의 이유를 애써 합리화하며 '노력을 유보'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성공과 성공이 가져다 주는 풍요를 기대하지 말라. 지금 바로 하지 않으면 당신은 매번 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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