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4일(월) 유정식의 경영일기


최근에 나는 차를 바꿨다. 장기렌트 방식으로 자동차를 빌려 타고 있었는데, 연희동으로 이사를 오고 나니 그 차가 골목이 많은 동네 특성상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비록 크기는 준중형 자동차(아반테 정도) 정도였지만, 코너를 돌거나 요철 많은 골목길을 갈 때 적잖이 조심스러웠다. 다음에 차를 바꾸게 되면 필히 작은 차로 하겠다는 마음이 절실할 정도였으니까. 다행히 장기렌트카 반납 시점이 도래했고 때마침 모 자동차 동호회에서 괜찮아 보이는 중고차 매물이 나왔기에 곧바로 거래를 했다. 돌이켜보니 대학교 다닐 때 ‘프라이드’를 첫차로 구매한 이래로 첫 번째 중고차다.


나온 지 7년된 중고차(수입차이지만 연식이 오래돼 국산 소형차 가격보다 싸다)이고 크기도 내가 딱 원하던, 전장 4미터 미만의 작은 차다. 골목 모퉁이에서 속도를 많이 줄이지 않아도 스티어링 휠을 돌리기만 하면 쏙쏙 빠져나가고, 양쪽에 불법주차를 해 놓아서 좁아진 길도 여유있게 지나갈 만큼 작은 차다. 일렬주차를 해도 앞뒤가 넉넉하게 남아 그다지 애쓰지 않고 바로 주차를 할 수 있다. 그 동안 주차해 놓으면 전봇대 위에 앉은 새들의 ‘똥 세례’를 많이 받아서 새똥 닦아내느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이 차는 앞뒤가 짧은 덕에 새똥을 받아내는(?) 면적이 작아서 그런지 새똥이 피해가는 느낌이다(물론 몇번 맞기는 했다). 그러니 이 차야말로 연희동 환경에 딱 맞는 ‘좋은 차’가 아닌가? 




하지만 이 차는 누군가에겐 ‘안 좋은 차’이기도 하다. 동호회를 통해 차를 구매하기 전에 매물을 알아보러 중고차 전문 매장을 둘러보기도 했는데, 이 차와 같은 차종을 발견하고 딜러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던 중이었다. 나이가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부부가 곁으로 오더니 자기들끼리 그 차에 대해 평을 주고 받기 시작했다. 부인이 그 차의 깜찍하고 귀여운 모습을 마음에 들어하자 남편이 가볍게 핀잔을 주었다. “당신이 차를 몰라서 그래. 승차감이 정말 나쁜 차야. 예쁜 것만 보고 샀다가 실망하지. ‘객관적’으로 정말 꽝이야.” 그는 차를 향해 손가락으로 X자를 그려가며 싫은 표정을 지엇다. 부인에 비해 차를 잘 안다는, 약간의 거만함이 섞인 얼굴이었다. 이 차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바로 나)이 옆에서 딜러와 이야기를 하고 있든 말든 상관없는 건가?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 같았다. ‘이보게, 친구. 자네가 차를 몰라서 그런 모양인데, 이 차 샀다가 후회할 거야.’라고 말이다. 나는 머쓱해지려다가 살짝 기분이 상했다.


궁동산에서 내려다 본 연희동



그 아저씨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는 바는 아니다. 예전부터 그 차의 ‘악명 높은’ 승차감은 실제의 오너들로부터 들어왔기 때문이다. 서스펜션이 아주 ‘딱딱해서’ 길바닥의 크고 작은 요철에도 통통 튀고 휠베이스(축거, 앞뒤 바퀴 사이의 거리)와 윤거(좌우 바퀴 사이의 거리)가 짧은 탓에 바닥에서 오는 충격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차를 인수하고 며칠 타고 다녀보니 ‘엉덩이로 길바닥을 스캔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대번에 알게 됐다. 게다가 서스펜션이 딱딱해서 타이어가 노면을 ‘타는’ 경우도 많다. 약간 굴곡이 있는 도로면을 지날 때 약간씩 차가 휘청거리는 느낌이 있고 어떨 때는 ‘토크 스티어(핸들이 약간 돌아가는 현상)’도 발생하기도 한다. 이 차의 동호회 회원들은 뭐라 말할지 모르지만(그것마저 이 차의 매력이라고 할 것 같다) 아저씨의 말처럼 승차감이 꽝인 차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아저씨의 악평에 할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승차감 저하는 차 자체의 특성도 한몫 하지만 우리나라 도로가 정말로 형편없다는 게 더 큰 이유이니까 말이다. 운전을 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알듯이 깨끗한 노면을 만나기가 드물다. 보수한 흔적(소위 ‘땜빵’)이 없는 구간이 없을 정도다. 특히 비가 많이 오고 나면 아스팔트가 떨어져 나가 길이 패이기도 해서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골목길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평탄 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았는지 육안으로 봐도 ‘주름진’ 길도 있고, 조각보처럼 ‘땜빵’이 더 많은 곳도 있다. 이런 길을 가야 하니 승차감이 좋을 리가 있나? 


외국 이야기를 해서 좀 미안하지만, 매끈하게 깔린 독일과 일본의 도로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간선도로뿐만 아니라 이면도로, 골목길도 철저하다 싶을 정도로 ‘땜빵’ 하나 없이 깔려 있는 도로는 엉덩이에 별로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다. 아우토반에서 속도 무제한으로 달릴 수 있는 이유는 노면이 그만큼 매끄럽기 때문이다. 짐작컨대 도로 포장이 우수한 독일과 일본에서는 이 차(내가 소유한 차)가 승차감이 나쁜 차로 그렇게 지탄을 받을 만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토목기술이 세계적이라고 자화자찬하던데, 길 하나 매끈하게 깔지 못하는 ‘기본기 부족’에도 왜 그런 소리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이런 도로 환경 때문에 국산차의 서스펜션은 상대적으로 물렁물렁할 수밖에 없고 그런 쿠션감을 ‘승차감 좋다’라고 느끼는 소비자들이 많다. 번외로 말하는 건데, 승차감은 상당히 광범위한 뜻을 담고 있는 말이라서 차가 푹신푹신하다, 서스펜션이 부드럽다 등으로만 정의 내릴 수 없다.


아우토반.



서론이 좀 길었는데 내가 하려는 말은 이렇다. 우리는 무언가를 평가할 때 그것을 둘러싼 환경에 따라 평가가 크게 달라지는 오류에 빠진다. 그것 자체를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환경이 그것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한다. 똑같은 차가 어느 환경에 있는가에 따라 ‘좋은 차’가 되고 ‘안 좋은 차’가 되듯이 말이다. 차 자체의 특성은 변함이 없지만 우리나라 여느 도로처럼 울퉁불퉁한 도로를 달리면 ‘안 좋은 차’로, 쭉쭉 뻗은 아우토반을 달릴 수 있는 이와 골목길 운전과 주차 편의성을 우선으로 여기는 이에게는 ‘좋은 차’로 뇌리에 박히는 것이다. 각자가 어느 환경과 어느 조건 하에 있는가에 따라 평가는 이처럼 극과 극으로 갈리기 때문에 ‘내 평가는 객관적이야’라고 장담하는 태도는 때로는 위험한 판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람을 평가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가 어떤 일을 맡고 있는지, 그를 둘러싼 상사와 동료들은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 예산은 얼마나 주어지는지, 제품이나 서비스의 품질은 어떤지 등 수많은 환경 요소가 한 사람에 대한 평가에 영향을 미친다. 그를 다른 곳에 데려다 놓으면 ‘일 잘하는 직원’이 될 수도 있지만 ‘일 못하는 직원’으로 낙인을 찍을 수 있다. 바로 그런 평가를 내리는 상사와 동료들 자체가 그 직원을 둘러싼 ‘환경’의 일부라는 걸, 자신들이 그 직원의 ‘일 못함’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치는 요인일지도 모른다는 걸 인식하지 못한 채 말이다. 


무언가에 대한 평가는 반드시 그것을 둘러싼 환경 조건에 영향을 받는다. 어찌보면 당연한 말이다. 추운 날씨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것과 뜨거운 여름 한 낮에 같은 음료를 마시는 것을 생각해 보면 단박에 알 수 있지 않는가? 이 말을 평가의 객관성을 높이라는 뜻으로 해석하지 않기를 바란다. 물론 환경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그것 자체의 특성과 장단을 평가하려는 마인드를 가져야 하지만, 그럼에도 환경요소의 영향을 100% 없앨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가 ‘나는 이렇게 평가해’라고 말할 때 그가 어떤 환경요소의 영향을 받았는지를 이해하고 그의 평가를 존중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또한 ‘나는 객관적으로 평가해’라고 자신만만해하기보다 본인 주위의 환경이 평가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인정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각자의 ‘입장(立場)’은 각자가 처한 환경에 따른 평가이다.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환경을 이해하고 수용한다는 뜻이다. “이 차는 객관적으로 꽝이야”라고 대번에 평가 내리기 전에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읽고 내가 소유한 차를 ‘옹호’한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물론이다. 나는 ‘이 차를 소유한’ 환경 조건 하에 있으니까 팔이 안으로 굽을 수 밖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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