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28일(월) 유정식의 경영일기


<8월의 크리스마스>는 잊을 만 하면 한번씩 보곤 하는 영화다. 딱히 세보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열 번 이상은 본 듯 하다. 잔잔한 스토리와 절제된 대사, 그리고 영화 전반에 흐르는 음악이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다. 매번 주인공 ‘정원(한석규 분)’의 심정에 빙의가 되어 나라면 그렇게 죽어가는 상황에서 ‘다림’을 어떻게 바라볼까 상상해 보며 엔딩 타이틀이 올라갈 때까지 가슴 먹먹함을 ‘즐기곤’ 한다.


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배경이 된 ‘초원사진관’의 모습을 또렷이 기억할 것이다. 정원이 더운 여름날에 창문을 닦던, 다림이 유리창 너머로 ‘나, 들어가도 돼요?’라고 입모양으로 정원에게 묻던, 갑자기 연락이 끊긴 정원에게 화가 나 돌로 유리창을 깨뜨렸던 바로 그 초원 사진관은 그 모습이 정겹거니와 자칫 지루할 법한 스토리를 팽팽하게 유지시키는 영화적 장치이기도 하다. 


어제 우연히 어떤 예능 프로그램에서 군산을 소개하는 내용이 방영되었다. 군산의 명소 중 하나인 초원사진관을 방문한 출연자들은 감탄해 하고 영화 속 정원과 다림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이야기를 추억하며 사진관을 둘러 보았다. 한번 가봐야지 하다가 여태 가보지 못한 나는 반가운 마음에 화면을 주시했다가 이내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음, 뭔가 다른데…’ 영화 촬영 후에 철거된 초원 사진관을 군산시가 복원해서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는데, 영화 속 사진관과 비슷하긴 하지만 내 눈에는 크게 달라 보였다.


현재 재현된 초원사진관



영화 속의 초원사진관

영화 속 초원사진관



어떤가? 비슷해 보이는가? 아니면 아주 다른가? 일단 ‘초원사진관’이라는 간판부터 영화 속 간판과 폰트가 다르고 모양도 달랐다. 난 여기에서 바로 ‘빈정’이 상했다. ‘복원을 했다더니 이런 수준이구나.’ 영화 촬영지를 시에서 매입하여 복원한 것 자체는 영화 팬들에게 추억을 선사하는 일이라 매우 칭찬 받아 마땅하나, 그 ‘부족한 디테일’은 이번에도 여지 없었다. 간판은 사진관의 이미지를 가장 크게 좌우하는 오브제인데, 그것부터 실제를 충실히 복원하지 않았으니 나머지는 볼것도 없었다. 


게다가 창문에 떡하니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커다란 글씨는 왜 붙어 있는 걸까? 산수가 좋은 계곡 바위에 마음대로 새겨 넣은 낙서 같아 보였다. 초원사진관이라는 간판 글씨 자체가 바로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를 상징하건만 그렇게 써 넣어야만 할까? 그것으로 부족했는데 간판 옆에도 작게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라고 써 놓았다. 더욱이 왜 그렇게 많이 세워 놓았는지, 사진관 양 옆을 어지럽게 하는 홍보물도 볼썽사나웠다. 그런 홍보물이 영화 속 장면을 떠올리는 데 커다란 방해물이란 생각은 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이러한 디테일의 부족, 아니 디테일에 대한 무신경함은 우리나라 여러 관광 명소에서 ‘항상’ 발견된다. 안동의 하회마을도 마찬가지다. 셔틀버스를 타고 마을 초입에 들어가면 음식점들과 기념품 상점들, 박물관이 사람들은 먼저 맞이한다. 여기저기 메뉴를 써넣은 입간판들이 어지럽게 펼쳐져 있는 광경은 이내 눈살을 찌뿌리게 만든다. 명색이 우리나라 최고의 명소 아닌가? 폰트의 일치는 기대하지도 않지만, 저마다 바탕색도 다르고 크기도 제멋대로라서 한옥마을에 들어왔다는 생각보다는 어디에나 있는 음식점 거리를 걷는 기분이어서 머물고 싶은 마음이 처음부터 싹 사라져 버렸다. 전라도 낙원읍성에서도 이벤트에 사용됐다가 쓸모없어진 물건들을 한옥 뒷편 마당에 쌓아 놓아두는 ‘간편한’ 해결책에 잠시 어이가 없었다. 물레방아도 철근이 그대로 노출되어 조악하기 그지없었다(조선시대 때 그런 철근이 존재했었나?).




스위스 레만 호수가에 있는 작은 도시 몽트뢰는 전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다. 바로 그룹 <퀸Queen>의 리더였던 프레디 머큐리의 동상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레만 호수를 향해 다리를 벌린 채 팔을 쭉 뻗고 있는, 그가 공연에서 자주 연출하던 포즈를 실제 크기로 만들어 놓은 동상에서 관광객들은 기쁜 표정으로 기념촬영을 한다. 동상에 대한 설명은 돌 위 동판 위의 글씨가 전부다. 달랑 동상만 서 있음에도 매년 동상을 보러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상당하다. 이 동상이 우리나라에 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본다. 동상 주위에 프레디 머큐리의 동상임을 플랭카드로 써놓고, 동상 좌우로 홍보 입간판들이 도열을 했을 게 뻔하지 않을까? 


김연아 동상 (출처: 한국일보 http://www.hankookilbo.com/v/123c0b8a494a42409e8bb440301da404)



얼마 전 피겨선수 김연아의 동상이 인천공항 입국장에 세워져 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사진을 보니 평창 올림픽 홍보 차원에서 급조하여 만든 티가 역력했다. ‘너무 못생겼기’ 때문이다. 얼굴도 그렇고 포즈도 그렇고 김연아랑 비슷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깨진 얼음 모양 위에 세워진 모습도 실소를 유발했다. 누가 기획했는지 안다면 혼을 내고 싶을 정도였다. 헛돈도 이런 헛돈이 없다. 돈을 적게 들여 빨리 만들어 내는 것만 중요했던 모양이다. 몇 년 전에 군포시가 5억원 넘게 들여 김연아 동상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아 엄청난 빈축을 산 적이 있는데 어김없이 또 이런 것이다. 이렇듯 사람들의 눈을 어지럽히고 미적 감각까지 무감각하게 만들어 버리는 홍보물이나 조형물들이 우리 주위엔 너무나 많다. 거의 공해 수준이다.


‘빨리빨리’ 문화에 ‘보여주기식’ 지자체 홍보 마인드가 결합되어 오늘도 이곳저곳에서 GMO 작물처럼 번져간다. 뭐 하나라도 제대로 만들 생각보다는 빨리 만들어서 빨리 보여주고 빨리 성과를 내야 한다는 GMO적 발상이 지긋지긋하다. GMO로 인해 예술이 죽어간다. 그리고 하나 더! 우리는 왜 그런 못생긴 조형물과 홍보물과 소위 ‘관광 단지’를 참고 견디는가? 인문학적 소양이 중요하다면서 왜 실생활에서 스토리를 보존하고 디테일에 충실하려는 인문학적이고 예술적인 행동은 왜 발현하려 하지 않는가? 그냥 이 정도면 됐지, 뭐. 이 정도면 감지덕지지'란 생각이 졸속 행정과 단기적 시각의 경영을 방임한다. 더군다나 우리의 심미안과 예술적 소양을 해친다. 방임하고 한술 더떠 '감동하는' 순간 우리는 그런 '무 디테일'의 GMO 조형물의 공범이 된다. 그러니 우리는 달라진 초원사진관을 보고, 엉성한 안동 하회마을의 기념품 가게를 보고, 김연아를 사칭하는 동상을 보고 분연히 분노해야 한다.


"음, 경영의 시각으로 뭔가 더 코멘트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 글을 읽고 나서 H군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공무원들이 경영 마인드가 없다라든지, 뭔가 문제의 원인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해야 하지 않을까요? 경영일기라면서요."

나는 살짝 화가 났다.

"왜 내가 항상 그렇게 진단해주고 해결책을 제시해야 하죠? 이 글의 핵심 메시지는 우리가 그런 조악한 조형물과 홍보물의 고객으로서 당연히 분노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거에요. 고객이 왜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까지 알려줘야 하죠? 제대로 분노할 줄 알아야 그들이 앞으로 그런 조악한 행위는 하지 않을 거란 말입니다. 그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자는 거죠. 그게 핵심입니다."

H군은 "알겠어요."라며 쿨하게 대답했다. 쿨한 게 매력이다. 엄지 척!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