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뇌는 컴퓨터가 아니다   

2017. 7. 26.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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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26일(수) 유정식의 경영일기


1955년 4월 18일에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사망한 후에 많은 과학자들이 그의 뇌를 특별히 궁금해 했다. 뉴턴의 절대론적 과학관을 무너뜨리는 상대성이론을 제시하고 양자물리학(아인슈타인 본인은 양자역학에 회의적이었지만)의 기초를 닦은 20세기의 위대한 지성이었기에 당연히 그의 뇌가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부분이 있을 거라고 추측했던 모양이다. 들어본 적 있겠지만, 아인슈타인의 시신을 부검하던 병리학자 토머스 하비는 뇌만 빼내고 시신을 가족에게 돌려주었다. 어찌어찌해서 하비는 가족을 설득해서 뇌를 연구할 수 있도록 승낙을 받아냈고, 아인슈타인의 뇌는 240개의 덩어리로 나뉘어 여러 신경학자들에게 보내졌다.



그의 뇌 구조를 조사한 신경과학자 샌드라 위틀슨은 ‘하두정소엽’이라는 부분이 일반인들에 비해 상당히 크고 형태도 특이하다는 점을 발견했다. 하두정소엽은 공간적 추리력과 수학적 직관을 관장하는 부분이다. 이 부분이 평균 이상으로 발달되었기에 일반상대성 이론과 같은 천재적 업적을 달성한 것이 아닐까 위틀슨은 추측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만 특별히 발달된 하두정소엽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 수학자와 일반인의 뇌를 비교해 본 신경학자 쿠빌레이 에이디나가 수학자들의 하두정소엽이 일반인들보다 상대적으로 크다는 사실을 밝혔으니 말이다. 어떻게 보면, 아인슈타인의 뇌는 생각만큼 그리 특별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뇌의 특정 부위가 평균 이상으로 큰 사람이 존재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알고보면 단순하다. 어느 하나의 능력을 집중적으로 계발하면 그 능력을 관장하는 뇌의 부위가 발달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아마도 들어봤을 텐데, 바로 런던의 택시기사들의 이야기이다. ‘올 런던(All London)’이라고 불리는 런던의 택시 면허 시험은 세계에서 가장 어렵기로 소문이 나 있다. 모든 도로와 주택단지뿐만 아니라 공원, 관청, 호텔 등 손님이 목적지로 요청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장소를 알아야 하고 가장 이상적인 경로를 꿰뚫고 있어야 시험에 통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지망생들 중 절반 이상이 도중에 탈락하거나 포기한다. 


엘리너 맥과이어라는 신경학자는 런던의 택시 운전사 16명의 뇌를 MRI로 관찰했는데, 공간 탐색과 위치 기억력을 관장하는 ‘해마’의 뒷부분이 택시 운전사가 아닌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컸다. 같은 대중교통 분야에서 일하는 버스 운전사들과 비교해도 역시나 그들보다 크기가 상당히 컸다. 알다시피 버스는 정해진 노선을 가지만, 택시는 손님이 원하는 위치로 가기 위해 매번 길 찾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의문을 가질지 모르겠다. 택시 운전을 오래 해서 해마가 커진 게 아니라 애초에 해마가 큰 사람들이 어렵기로 악명 높은 택시 면허 시험을 통과한 것은 아닐까? 시간적 선후관계가 반대일 가능성이 충분했는데, 맥과이어는 후속 연구를 통해 혹독한 교육을 거쳐 택시 면허를 취득한 사람은 시험 전에 비해 해마의 뒷부분이 커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다시 말해, 택시 운전을 시작하면서 모든 장소와 이동경로를 학습하는 과정이 일어났고 그 결과로 해마가 발달한다는 뜻이었다.


아인슈타인의 뇌 조각을 들고 있는 토머스 하비



컴퓨터보다 뇌가 훨씬 오래 전에 생겨 났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인간의 뇌를 CPU나 메모리에 비유하기를 즐긴다. 이런 비유는 비록 직관적이긴 하지만, 인간의 뇌가 CPU의 성능처럼 한계가 있다는 고정관념을 형성시키고, 학습 과정은 메모리에 소프트웨어를 띄우는 일과 같다는 인상을 갖게 만드는 문제가 있다. 수학자와 런던 택시기사의 사례에서 보듯이 인간의 뇌는 훈련을 통해 언제든 커지고 더 발달할 수 있는 성질을 지닌다. 집중적인 근육 운동을 하면 근육이 발달하는 것과 사실상 다를 바 없다. 이를 ‘가소성(Plasticity)’이라고 부른다. 이런 관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학습이란 뇌의 구조가 변화하는 과정이라고 봐야 옳다.


이러한 뇌의 가소성은 크기에서만 나타나지 않고 기관의 ‘역할 재배치’에서도 놀라운 효과를 발휘한다. 시각장애인들의 시각피질은 그 기능이 정지해 버린 ‘암흑 지대’라고 간주하겠지만, 뇌는 손가락으로 점자를 읽는 감각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의미를 해석하도록 시각피질에 새로운 기능을 할당한다. 이래도 뇌가 컴퓨터의 CPU나 메모리와 비슷한가? 



고백하자면, 요즘 눈 앞의 글씨가 안 보여서 책이나 모니터를 볼 때마다 안경을 벗어 머리 위에 걸쳐놓는 일이 많아졌다. 그렇다고 멀리 있는 게 잘 보이지도 않는다. 근시와 원시 사이, 소위 ‘노안’이 찾아온 것이다. 매번 안경을 벗는 게 귀찮고 안경이 쉽게 망가질 것 같아서 나는 안경 렌즈 부위만 위로 들어올리는 플립형 안경을 끼고 다닌다(사람들이 다 신기해 한다!). 안과의사는 어쩔 수 없는 과도기니 받아들여야 한다고 나에게 조언 아닌 조언을 했다. 처음에는 그런가보다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연습을 통해 노안을 극복할 수 있다는 이스라엘 신경학자 유리 폴라트의 연구를 알지 못한 것이 틀림없다. 그의 연구에서 일주일에 세 번 30분씩 시력 훈련에 참가한 사람들은 물체의 색과 배경의 색이 아주 비슷해서 어떤 물체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문제를 계속 맞혀야 했다. 3개월 후에 참가자들은 예전보다 60퍼센트 더 작은 글씨를 읽을 수 있었는데, 나이가 들어 축 쳐진 수정체가 탄력을 회복해서가 아니었다. 뇌가 눈으로 들어오는 시각정보를 더 잘 해석해 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인간의 뇌는 물렁물렁하다. 아인슈타인까지는 아니더라도 런던에서 그 어렵다는 택시 운전쯤은 할 수 있고 불편한 노안을 극복할 수 있다. 물론 집중적인 훈련과 의지가 뒷받침된다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제 사람의 뇌를 컴퓨터에 비유하는 일은 그만하지 싶다. 아인슈타인의 뇌 이야기가 어떻게 경영과 연관이 있는지 궁금할지 모르겠다. 간단히만 언급하자면, 인간은 로봇이 아니다. 뇌는 컴퓨터나 소프트웨어가 아니다. 이런 기계론적 시각을 버려야 직원을 로봇처럼 여기는 기계론적 경영방식을 없앨 수 있을 테고, 넓게는 인간성을 회복한 사회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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