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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10일(월) 유정식의 경영일기


“화장실 휴지를 잘못 걸어 놓으셨군요. 그렇게 걸면 안 돼요.”

사무실에 딸린 화장실(애석하게도 남녀공용 화장실이다)을 사용하고 나온 H군이 다짜고짜 나에게 핀잔을 주었다. 

“뭘 잘못 걸었다고 그래요?”

“휴지의 방향이 뒤로 늘어뜨려져 있잖아요. 방향을 바꿔서 앞으로 늘어뜨리게 해야 해요.”

이렇게 말하고는 그냥 두고볼 수 없어서 자기가 손수 방향을 바꿔 놓고 나왔다고 덧붙이는 게 아닌가? 

“휴지를 앞으로 늘어뜨려야 좋다는 근거라도 있어요?”

이렇게 반박하니, H군은 더 알듯 모를듯한 대답을 했다.

“그래야 사용하기가 편하고 휴지도 덜 쓰게 되거든요.”


나는 아리송했다. 휴지가 앞으로 늘어뜨려진 상태(롤 오버, roll over)가 뒤로 늘어뜨려진 상태(롤 언더, roll under)보다 낫다는 H군의 주장은 과연 옳은지 궁금했다. 만일 H군의 말대로 롤 오버 상태가 휴지를 덜 쓰게 되는지 알려면 적어도 몇 개월 동안 실험을 해서 실제의 휴지 사용량을 비교하면 될 터였지만 지금 당장 확인하기가 불가능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해볼 여력은 없었다. 



(왼쪽이 롤 언더, 오른쪽이 롤 오버 방식)



궁금해서 연구 자료가 있나 찾아보았다. 세상에! 이런 걸 연구하고 조사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그런데 몇몇 연구들이 서로 반대되는 결론을 내놓아서 롤 오버 방식이 휴지 사용량을 줄인다는 주장이 옳다고 볼 수는 없었다. 나는 롤 오버여야 사용하기가 편하다는 H군의 말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아마도 롤 언더 상태이면 변기에 앉아 있는 사람으로부터 휴지의 끝이 약간은 멀리 있으니까(아마도 10센티미터 전후)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그 거리 차이가 좁은 화장실 안에서 과연 사용하기에 불편을 야기할 정도인가? 롤 언더이면 휴지 사용량이 더 많다는 주장도 휴지 끝이 더 멀리 있기에 휴지를 더 많이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게 된다는 이유에서 나온 것 같은데, 어느 정도 일리가 있긴 하지만 정확한 실험 결과가 없으니 아리송했다.


롤 오버와 롤 언더 중에 어떤 방향이 더 마음에 드는가? 미국에서 실시된 여러 번의 설문에 따르면 60~70퍼센트의 사람들이 롤 오버를 선호한다고 한다. 이렇듯 롤 오버가 대세인 건 확실하지만(그래서 호텔 화장실은 죄다 롤 오버인 모양이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롤 언더를 좋아하는 사람도 30~40퍼센트나 된다는 뜻 아닌가? 롤 오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의아해 할 수치다. 롤 언더 선호자들은 롤 언더가 좀더 정돈된 모습이고(휴지 끝이 뒤로 가서 벽에 가깝게 있는 걸 보고 말하는 듯 하다), 걸음마를 뗀 아이들이나 반려동물이 화장지를 다 풀어헤칠 가능성 적으며(휴지 끝이 뒤에 감춰져 있으니 장난칠 가능성이 그만큼 줄 테니까), 캠핑카처럼 움직이는 공간에서 저절로 풀어지지 않는다(납득이 가지는 않는다)는 게 선호의 이유라고 말한다. 롤 오버, 롤 언더 양측 모두 나름 일리 있는 주장을 펼치고 있기에 어떤 방향이 올바른 화장실 사용에 부합된다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다.


고양이들의 장난을 막으려면 롤 언더가 좋다며 드는 근거. 롤 언더로 돼 있으면 고양이가 화장지를 돌려도 휴지가 풀리지 않는다면서.



확실히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롤 오버를 선호하는 사람과 롤 언더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성격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길다 칼 박사는 18세부터 74세 사이의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롤 오버인 사람은 인간관계에서 좀더 주도적이고 적극적이며 타인에 대해 지배적인 성향이 더 강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반면 롤 언더를 선호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순종적이고 친화적이며 유연한 성격을 지녔고 다른 사람의 감정에 더 많이 공감한다고 밝혔다. 흥미로운 점은 다른 사람의 집에서 휴지 방향을 바꿔 놓은 사람이 5명 중 1명 꼴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아마도 롤 오버를 선호하는 사람이 그랬을 것 같다. 롤 오버인 사람들이 화장지 방향에 더 민감하고 짜증을 더 낸다는 킴벌리 클라크 사(휴지를 만드는 회사다!)의 조사도 있으니 말이다. 내 사무실의 화장지 방향을 손수 바꿔 놓았다는 H군(롤 오버 선호자)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롤 오버인 사람의 수입은 롤 언더인 사람보다 높을까, 낮을까? 신기하게도 이런 질문을 던진 설문조사도 있다. 롤 언더인 사람들 중 73%가 연 수입이 2만 달러 이하인 반면, 롤 오버인 사람들 중 60%가 연 수입이 5만 달러가 넘는다고 한다. 평균적으로 롤 오버인 사람의 수입이 더 많다는 의미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롤 오버인 사람들의 적극적이고 위험을 감수하는 성격이 더 많은 수입 창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서일 것이다. 하지만 휴지 방향을 롤 오버로 바꿔 놓으면 수입이 늘 거라고 이해할 독자는 없기를 바란다. 논리적으로 ’A이면 B이다’가 참이라고 해서 ‘B이면 A이다’가 반드시 참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장지 방향은 개인의 선호니까 남의 집 화장실 휴지를 마음대로 바꿔놓는 무례는 앞으로 범하지 않는 게 좋겠다. 특히 H군 같은 롤 오버 선호자들이 명심해야 할 사항이다.


“치약을 그렇게 사용하면 안돼요.”

H군에 책상에 놓인 치약을 보며 이번엔 내가 한 소리 했다. 일종의 복수 차원이었다. 중간부터 아무렇게나 짜서 써서 치약 튜브 가운데만 홀쭉했다.

“치약을 이렇게 쓰면 안 되나요?”

“당연히 안 되죠. 휴지를 롤 언더로 하면 휴지를 많이 쓰게 되니까 안 된다면서요? 치약을 그렇게 중간부터 눌러 쓰면 치약을 오래 못써요.”

“귀찮아요! 그냥 이렇게 쓸래요.”

H군의 명쾌한(?) 반박에 할말을 잃었다. 그래, 휴지든 치약이든 자기 마음대로 쓰면 되지, 뭐. 피곤하게 일일이 지적하면 무엇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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