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3일(월) 유정식의 경영일기 


“지금보다 연봉을 2배 주겠다고 회사 측에서 제안한다면 열심히 일하시겠습니까?”

며칠 전 나는 모 기업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성과주의 인사제도의 문제점(특히 차등보상의 문제점)을 강의하던 중에 어떤 여성 직원에게 이렇게 물었다. 몸살에 걸려 진통제를 2알 먹고 겨우 진행하던 강의여서 그랬는지 나는 그녀의 답변을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당연히 열심히 일하죠.”라고 대답할 게 뻔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예전에 여러 직원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하나같이 이런 대답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갑자기 연봉을 2배 준다고 하는데! 이런 대답이 나오면 나는 “그렇게 열심히 일하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오래 갈까요?”란 후속 질문을 할 참이었다. 이 질문에 “1년이요.”라는 사람도 있고 “1개월 정도”라는 사람도 있는데, 대개 “3~4개월 가량”이라고 답을 한다. 실제로도 남들보다 연봉을 크게 높여주면 기분 좋아서 일을 열심히 하려는 동기는 3개월을 넘기지 못한다. 사람의 마음이 간사해서 3개월 이후에는 ‘이 연봉이 동료들보다 꽤 좋기는 하지만 응당 내가 받아야 할 연봉 아닌가?’라는 생각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자신의 ‘시장가격’이라고 간주하고 어느덧 더 높은 연봉을 자신에게 줘야 일하고자 하는 동기를 이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어쨌든 이런 시나리오를 기대하고 있던 나는 빨리 집으로 돌아가 쉬고 싶은 마음만 굴뚝이었다. 그런데…


“더 이상 어떻게 일을 열심히 하죠? 이미 최대치를 하고 있는데?”

의외였다. 많은 사람들에게 갖가지 대답을 들었지만, 이런 대답은 처음이었다. 그녀의 쉬크한 얼굴에서는 연봉을 2배 주든지 말든지 그건 상관없다는 표정이 읽혔다. 당황한 나는 (몸살 때문에 더 그랬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현재의 업무에 어떤 문제가 있는데요?”라고 질문했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아프면 변화를 싫어하는 인간의 심리 때문인지 나는 이미 구상해 둔 시나리오로 그녀를 몰고 갈 생각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래도 기분 좋아서 지금보다 열심히 하려는 생각이 들지 않겠어요?”라는 멍청한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어떻게든 “열심히 일을 하고 싶을 거에요.”란 대답으로 유도하고 싶었다. 





“이런, 멍청한!”

집으로 돌아와 약을 먹고 누워 있던 나는 이렇게 혼잣말을 하며 이불을 걷어 차고 일어났다. 이런 걸 이불킥이라고 하던가? 그녀의 대답 속에서는 직원들이 현장에서 감당해야 하는 업무의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미 업무량이 턱 밑, 아니 코 밑까지 차올라 숨이 막힌데, 높은 연봉을 흔들어 대며 ‘이렇게 더 줄 테니 지금보다 더 열심히 일할래?’라고 유혹하는 것은 얼마나 의미없는 짓인가? 야근과 주말근무는 물론이고 퇴근 후에도 ‘카톡’으로 이어지는 업무 지시, 갑자기 위에서 떨어지는 수명 업무 등으로 많은 직원들이 고통 받고 있다는 현실을 나는 잠깐 망각하고 말았다. 


“연봉을 많이 받고 싶습니다.”라고 대부분의 직원들은 말하지만 이 말은 강도높은 업무에 대한 보상으로, 즉 ‘돈이라도 많이 받아야지’라는 이유 때문이다. 직원들의 속마음은 돈을 많이 받고 싶기보다 ‘쉬고 싶고, 인생을 즐기고 싶은’ 것이다. 직원들이 지금보다 많은 연봉을 기대하고 요구한다고 해서 그 액면만 보고 어떻게 하면 연봉을 높여줄지 혹은 어떻게 차등보상을 강화할 것인지, 우수인재에겐 어떻게 보상할지 등을 논의하고 실행해 봤자 직원들의 동기 향상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점, 그리고 그 이유가 과중한 업무 로드 때문이라는 점을 그녀가 새삼 일깨워 주었다. 다시 말해, 업무 강도의 경감, 컴팩트한 업무 구조, 일과 생활의 적절한 균형 등이 ‘보상이라는 장난감’보다 동기 유지에 훨씬 중요한 요소다.




“번아웃(burn-out)이란 말은 정확하지 않은 표현 같은데요?”

H군에게 이 에피소드를 전하면서 그녀가 상당히 번아웃된 것 같다고 하니 H군은 이렇게 반박했다. ‘어, 또 왜 이러시나?’

“번아웃은 무언가를 열심히, 맹렬히 하고 나서 하얗게 타 버렸다는 뉘앙스가 풍겨요. 마라톤을 뛰고 나서 기진맥진해진 상태 같다고 할까요?”

“그러면 그 여성 직원은 어떤 상태인데요?” 몸살로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누르며 나는 물었다.

“번아웃된 게 아니라, 무기력해진 거에요. 나쁘게 말하면 ‘좀비’ 같다고 해야 할까요? 자기가 회사에 왜 다니는지, 왜 이 일을 하는지 모르면서 시계추처럼 왔다갔다하는 상태가 돼 버린 거죠.”

“좀비라고요? 너무 심한 표현 아닌가요?”


H군은 단호했다.

“아뇨. 좀비가 정확한 표현이에요. 그리고 직원들을 좀비로 만든 건 바로 경영자들의 책임이죠. 매일 야근에 주말근무에, 시시때때로 울리는 카톡에, 회식과 주말 산행에 언제 직원들은 자기 삶을 즐길 수 있을까요? 살아아있다는 감정은 ‘오감(五感)’을 느낄 수 있을 때 찾아와요. 오감을 느끼려면 자기만의 시간이 있어야 하죠. 그런데 진짜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직원들은 얼마나 될까요? 오감을 느낄 기회를 회사 때문에 차단 당하니까 살아있다는 감정이 생기지 않고, 점점 무기력해지고, 한번 무기력해지면 좀처럼 활력이 생겨나지 않고, 그러니까 좀비와 비슷하다고 말하는 거에요. 무기력의 악순환이죠. 무기력이 번아웃보다 훨씬 무섭고 훨씬 해결하기가 어려워요.”


좀비라는 표현만 아니라면 H군의 의견에 100퍼센트 동의한다. “더 이상 어떻게 일을 열심히 하죠?”라고 말하던 여성 직원의 표정에서 나는 무기력을 읽었어야 했다.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는 상태, 아무것에도 감정의 반응이 없는 상태에서 돈을 논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녀에게 오감을 회복시켜 주고 삶의 맛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먼저다. 그러면 알아서 일의 의미를 찾을 것이고 자신이 맡은 업무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뾰족한 해답이 아직 나에게 없는 게 아쉽다.


“제 오감을 회복시키려면 팥빙수를 먹어야 해요!”

진지한 대화를 하나 싶더니 H군은 또 팥빙수 타령이다. 빙수기계를 하나 사든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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