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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20일(화) 유정식의 경영일기 

 

“팥빙수는 판매하지 않습니다.”

햇볕이 뜨거운 거리를 무려(?) 400미터나 걸어서 오래 전부터 연희동 동네에 자리를 잡고 있는 빵집을 찾은 H군이 점원에게서 들은 말이다. 때이른 불볕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한낮의 목마름과 공복감을 동시에 해소하기에 딱 좋은 음식이 팥빙수 아니겠는가? 그런데 팥빙수를 팔지 않는다니, H군의 땀으로 흥건한 얼굴은 이 말을 듣자마자 짜증으로 일그러졌다. 

“왜 안 팔죠?”

전혀 물러설 용의가 없는 H군이 따져 물었다.

“팥이 다 떨어져서요.”

“왜죠?”

상담가의 직업병인가? H군은 난처해 하는 직원을 놓아주지 않았다.


알고 보니 이랬다. 수요미식회에 이 빵집의 단팥빵이 소개된 모양이었다. 빵집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수요미식회에 소개된 빵이라고 자랑스레 타이틀이 붙어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들고나던 소박한 곳에 며칠 전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는 이유가 궁금했던 H군은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했다. 방송에 소개된 단팥빵을 더 많이 만들어 팔려고 팥빙수에 쓸 팥이 없는 게로군! 아무리 그래도 막 더워지는 때에 팥빙수를 팔았다가 안 파는 게 어딨나! 이건 동네 사람들을 홀대하는 것 아닌가!


H군이 간절히 원했던 바로 그 팥빙수. 내가 작년에 찍은 사진이다. 이땐 팥을 더 달라면 기꺼이 주곤 했다.



놋그릇에 콩가루가 뿌려진 얼음 알갱이가 가득 담긴 팥빙수를 먹을 생각으로 한껏 기대에 찼던 H군은 풀이 죽은 채 다시 뜨거운 햇볕 속으로 되돌아와 나에게 이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나는 땀을 닦으라고 H군에게 휴지를 건넨 다음 이렇게 말했다. “먹방의 저주가 그 빵집에도 미치겠는데요.” 먹방의 저주란 이런 것이다. 요즘 횡행하는 수많은 먹방들, 그래서 이제는 지긋지긋하기까지 한 먹방에 어떤 음식점이나 제과점이 소개되면, 방송을 본 시청자들이 그곳으로 일시에 몰린다. 갑자기 늘어난 손님들 때문에 음식점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면서 음식이 없어 못파는 기회손실을 최소화하려고 잘 팔리는(방송에 소개된) 음식에 인력이든 재료든 무엇이든 집중한다. 다른 음식은 먹는 사람에게나 만드는 사람에게나 홀대를 받는다. 


외지 손님들이 많아진 탓에 오래된 동네 단골들 역시 이 과정에서 홀대를 받는다. 일부러 단골을 홀대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줄이 길어서 되돌아가야 하는 상황, H군의 경우처럼 팥이 없어서 팥빙수를 못 먹는 상황, 즉 다른 음식을 먹고 싶어도 못 먹는 상황이 바로 동네 단골이라는 충성고객들을 홀대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단골들은 섭섭함을 느끼며 점점 발을 끊기 시작한다. 심각한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먹방은 오늘도 계속되고 내일도 계속된다. 지금은 외지 손님이 많아 몸이 모자랄 지경이라 해도 다른 먹방에서 소개된 비슷한 음식으로 외지 손님들은 이동하기 마련이다. 더욱이 손님들이 한두 번 먹어보고 아주 특별할 게 없다고 느낀다면 ‘재구매율’은 상승할 줄 모르거나 오히려 떨어지고 그렇게 길었던 대기줄은 짧아진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동네 단골들에게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떠난 단골들은 이미 다른 ‘대체재’를 확보했고 한번 상한 빈정은 회복되기가 어렵다. 지나다가 옛정 때문에 찾은 단골들이 몇몇 있겠지만 외지 손님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에만 그간 집중한 탓에 먹고 싶은 ‘자기만의 음식’은 사라졌거나 예전 맛만 못하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라며 옛단골은 마음의 문을 굳게 닫는다. 이게 먹방의 저주다.




비슷한 사례가 있다. 연희동에는 방송에 소개된 유명 중국 음식점이 있는데, 그 전에는 동네 손님들을 중심으로 고급 중국요리와 술이 주로 팔리던 곳이었다. 하지만 이곳의 셰프가 방송을 ‘엄청 타면서’ 예약 문의가 쇄도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몇 달씩 기다려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나는 모르고 이곳에 예약전화를 했다가 기겁을 했다). 당연히 동네 단골들은 이 중국집의 요리를 맛볼 기회를 차단 당했고 예약을 안 해도 언제든 편안하게 갈 수 있는 부근의 다른 중국집들로 발길을 돌렸다. 이제 이곳을 찾는 연희동 주민들은 과연 몇이나 될까? 게다가 먹방의 저주는 종종 ‘객단가’의 하락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게다가 방송을 보고 외지에서 찾아온 손님들이 주로 주문하는 음식은 중국집의 3총사인 짬뽕, 짜장면, 탕수육에 집중되는 바람에 객단가(고객 1인당 평균 매출)는 오히려 떨어졌다는 소리가 들렸다(소문이기에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모르긴 해도, 위의 빵집도 단팥빵은 많이 팔겠지만 나중에 주판알을 튕겨보면 객단가 혹은 고객 1인당 이익기여도가 하락하지는 않을까?


빵집 이야기가 나왔으니 내친 김에 더 해보겠다. 효자동에 있는 어떤 빵집은 들어가자마자 점원들이 접시에 시식용 빵을 들이밀며 ‘우리 빵집에서 가장 잘나가는 빵입니다. 2등은 저 빵이고, 3등은 저 빵입니다.’라고 말한다(요샌 안 그럴지도 모르지만, 세 번 정도 갔었는데 매번 그랬다). 잘 알려진 빵집이라고 해서 어떤 빵이 있나 천천히 구경할 셈이었는데, 점원들이 거의 기계적으로 이렇게 나오는 통에 마음이 급해지고 눈치가 보여서 오히려 빵집을 빨리 빠져나가고 싶었다. ‘1, 2, 3등이 아닌 빵을 고르면 죄가 되나요?’ 1~3등이 아닌 빵들이 슬퍼보였고, 이런 영업방식이 고객에게 좋은 선택을 하도록 해주는 방법이라고 여기는 듯해서 안타까웠다. 유명한 군산의 ‘이성당’도 야채빵과 앙금빵에만 손님을 일부러 몰게 하는 것 같아서 아쉬운 곳이다.




2015년 1월에 전국의 10대 빵집을 돌아다니면서 각 빵집을 경영의 시각으로 간단하게 분석해 본 적이 있다(덕분에 엄청나게 조회수가 높았다. http://www.infuture.kr/1501 ). 그때 내가 나름 1등으로 꼽았던 빵집이 부산의 ‘백구당’이었다. ‘크람빵’이 유명하다고 해서 맛보려고 했는데 둘러봐도 없어서 나는 점원에게 물었다. 돌아온 대답이 걸작이었다. 손님들이 크람빵만 너무 찾는 바람에 다른 빵들이 외면 받는 것 같아 지금은 만들지 않는다고 점원은 대답했다. 여러 가지 빵을 많이 만들어도 크람빵만 팔리니 빵 만드는 사람의 자존심은 이를 용인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아니면 크람빵만 연신 만들어 팔다가 먹방의 저주와 비슷한 패착을 겪고 난 후에 마침내 동네 단골의 중요성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용기에 감복 받는 나는 크람빵 맛을 못 본 섭섭함도 잊고서 베스트 3에 백구당을 자신있게 올려 놓았다.


“이제 어디 가서 팥빙수를 먹나?”

H군은 팥빙수에 미련이 많은 듯 했다.

“그러면 우리가 직접 빙수가게나 해볼까요?”

이 말을 듣고 H군은 나에게 눈을 흘겼다. 어디서 뺨 맞고 와서 괜히 나한테 화풀이다. 어쨌든 40년 전통의 동네 빵집이 부디 먹방의 저주에 빠지지 않기를, H군이 다시금 시원하게 팥빙수를 들이키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안 그러면 매일 시달릴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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