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2일(금) 경영일기


연희동에 스타벅스가 들어오던 날, 나는 소박하면서도 격이 있는 주택가까지 거대 다국적 기업의 자본이 손을 뻗은 것 같아서 마음이 꽤 불편했다. 연희동 곳곳에 자리를 잡은 아기자기한 까페들이 스타벅스의 진입으로 손님들을 빼앗기게 되고, 외국 자본까지 들어왔으니 건물주의 임대료 인상 욕구가 고개를 들 것이고, 급기야 연희동에도 젠트리피케이션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은 아닌가 염려가 앞섰다. 개점 첫날부터 그 넓은 공간을 빼곡히 메운 손님들을 보니 더 심난해졌고 ‘나는 이곳을 이용하지 않으리라’ 마음 먹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웬걸? 그렇게 마음까지 굳게 먹었지만 목이 말라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끌려 어느새 점원에게 주문하는 나를 발견하고 말았다. 게다가 자리에 앉으니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 뻥 뚫린 공간에 여러 테이블이 가득한 터라 처음에는 번잡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으나, 막상 테이블에 앉아 1시간 정도 있어 보니 연희동의 다른 까페들보다 안정되고 쾌적했다. 나와 비슷하게 처음엔 거부감을 보였던 지인들도 ‘염탐’을 핑계로 몇 번 가보더니만 역시나 장소의 매력이 있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그게 뭘까? 지인들과 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합의에 이른 결론은 ‘스타벅스는 손님들에게 눈치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오래 앉아 있어도, 심지어 1잔만 시켜놓고 여럿이 앉아 있어도, 도서관처럼 노트북을 펼쳐 놓고 공부를 해도 카운터의 직원들은 개별 손님들에게 눈치를 주지 않는다는 게 스타벅스가 주는 편안함이라는 것이다. 주인이 직접 운영하는 소규모 까페에서 달랑 1잔을 시켜놓은 채 오래 앉아 테이블을 독차지한다면 주인은 주인대로 심기가 불편하고 손님은 손님대로 자신에게 쏘아보는 주인의 레이저에 마음을 놓을 수 없다(물론 아랑곳하지 않는 손님은 논외로 하자).


(내가 자주 가던 스타벅스를 그려봤습니다. 아쉽게도 지금은 사라졌습니다.)



스타벅스는 모든 지점이 직영이고 종업원들의 교육과 관리는 본사에 의해 이루어진다. 종업원들은 매출을 갉아먹는 ‘죽돌이 손님’에게 눈치를 주지 않아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덜 팔아도 급여를 받는 데 회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스타벅스는 소위 ‘돈 많은 거대 다국적 기업’이지 않은가? 영세 사업자가 운영하는 까페와 달리 당당하게 엉덩이를 붙이고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다. 와이파이도 빵빵하고 여기저기 전원 콘센트도 많아서 오히려 오래 앉아 있기를 바라는 듯 한 분위기도 편안함을 배가하는 요소다.


물론 같은 손님 입장에서 이런 스타벅스가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주변에 대학교가 있어서 그런지 주말이면 여기가 대학교 도서관인지 착각할 정도로 자리를 펼쳐 놓은 학생들이 많아서 정작 커피를 즐기러 찾은 손님들이 앉을 자리를 찾기가 어렵다. 1인용 자리도 많건만 4인 테이블에 떡 하니 휴대용 스탠드와 독서대를 세워두고 커다란 노트북을 두드려대는 학생들을 심심치 않게 목격한다. 이런 ‘죽돌이 손님’은 점원들이 좀 통제를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스타벅스에서 심심해서 그린 그림



그럼에도 ‘남들에게 주목 받지 않을 권리’를 갖게 하는 스타벅스의 매력은 무시하기 어렵다. 탁 트인 공간에서 만끽하는 ‘익명성’이 스타벅스의 진짜 매력은 아닐까? 앉아서 무얼 하든 관여치 않는 자유로움이 스타벅스의 또다른 힘은 아닐까? 작은 까페에 주인과 단 둘이 있는 상황은 어색하기 그지 없다. 커피맛이 특별하지 않거나 주인과의 친밀함 없이는 매일 가기 어렵다. 온라인 상의 교류가 더 편한 세대들에게 각자가 섬처럼 앉아 있는 스타벅스야말로 비록 물리적으로는 오프라인이지만 가상세계의 연장이다. 


개인적으로 나도 스타벅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아침에 아들을 학교에 보내고 집앞 스타벅스에 8시부터 12시까지 4시간 동안 앉아 책도 쓰거나 고객에게 줄 보고서를 작성하곤 했다. 나는 그곳에서 2008년부터 2013년까지 5년 간 세 권의 책을 썼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돌이켜 보니 내가 그리할 수 있었던 것은 이제와 생각하니 바로 스타벅스가 보장하는 ‘익명성’ 덕분이었을 게다. 이 또한 물리적인 공간의 힘일 게다. 그리고 이것이 죽돌이 손님 때문에 잃어버리는 매출 기회를 충분히 보상 받는, 눈에 보이지 않는 스타벅스의 경쟁력일 게다. 스타벅스를 보니 커피맛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전략은 너무 순진해 보인다. 커피를 팔지 않고 공간을 파는 게 스타벅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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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이론적인 내용과 학술적인 용어를 최대한 배제하고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사건이나 경험을 경영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기록하는 것이 경영일기의 취지입니다. 말 그대로 일기인 탓에 다소 두서가 없고 덜 체계적이라 해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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