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전에는 사무실에서 쓸 간단한 의자와 소품 몇 개를 구입하기 위해서 광명시에 위치한 이케아를 찾았습니다. 개점한 지 제법 시간이 지났으니(두달 가량) 지금쯤이면 길게 줄을 서며 기다려야 하는 불편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다행히 어려움 없이 주차하고 바로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 넓은 주차장이 월요일 오전임에도 거의 만차인 걸 보니 이케아의 인기가 여전히 높다는 게 느껴지더군요.


2층에 위치한 쇼룸에서 여러 가지 물건들을 구경하고 카페테리아에서 요기를 한 후에 1층의 셀프 서브 구역에서 원하는 물품을 픽업해서 계산대로 향하는, 이케아가 세심하게 설계한 동선을 따라 움직였습니다. ‘이 물건을 어떻게 배치할까?’, ‘이것이 다른 가구들과 잘 어울릴까?’ 등을 생각하면서 매장을 돌다 보니 어느새 4시간이 훌쩍 지나 있더군요. 그 안에서 하루종일 놀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비록 4시간 가량의 짧은 방문이었지만 왜 전세계 사람들이 이케아에 열광하는지를, 이케아의 경영철학이 얼마나 독특한지를, 우리나라 가구기업들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등을 알아차리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이미 많은 분들이 이케아 광명점을 방문하고 매장과 물건을 소개하는 식으로 후기를 남겼지만, 저는 경영 컨설턴트의 관점에서 이케아의 ‘진짜 매력’을 간단히 정리했습니다(E1이니 E0니 하는 친환경소재 사용 여부와 고가격과 관련된 논란은 많은 이들이 이미 언급했으니 여기서는 생략하겠습니다).


우선 이케아에서는 돈을 벌려는 ‘냄새’가 나지 않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이케아의 주차장에 들어서고 매장을 잠시 둘러보자마자 든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매장을 세운 목적 중 하나가 매출과 점유율 확대임은 틀림없겠지만, 질 좋은 가구들을 싸게 판매한다는 것 외에도 매장 어디에서도 고객의 지갑에서 돈을 빼가겠다는 ‘악착스러움’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게 느꼈냐구요? 


첫째, 그 넓은 주차장이 무료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물론 3시간까지만 무료도 그 후에는 구매 영수증이 없으면 2만원을 부과한다는 안내문은 걸려 있죠. 하지만 이케아와 와서 아무것도 구매하지 않을 고객이 얼마나 될까요? 게다가 구매 금액에 따라 무료 주차 시간을 차등하지도 않으니 실질적으로는 주차요금이 0이라는 의미입니다. 주차장을 나갈 때 영수증 검사를 할 거라 예상했는데 출구에는 아무도 없고 차단봉조차 없더군요. 직원들이 출구에서 세금을 징수하는 사람처럼 구매 금액에 따라 악착같이 주차요금을 받는 국내 쇼핑몰과 확실히 대비가 됐습니다.




주차요금 걱정 때문에 별로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사도록 하고, 매장 안에 머물며 충분히 오랫동안 즐기지 못하게 만들고, 물건값을 깎아주는 척하며 대신 주차장에서 돈을 버는, 그러면서도 ‘우리는 고객만족을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거는 모순과 '찌질함'을 이케아에서는 전혀 감지할 수 없었습니다.


돈을 벌겠다는 냄새가 나지 않은 두 번째 이유는 음식값이었습니다. 메쉬드 포테이토가 포함된 미트볼 10개 가격이 5900원, 불고기 덮밥이 3900원, 무한 리필되는 탄산음료가 500원 밖에 되지 않더군요. 싸지만 음식맛도 꽤 괜찮았습니다. 매장 내 카페테리아를 독점 운영하며 손님들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고 20~50% 비싼 가격에 음식을 판매하는 국내 쇼핑몰, 그들과 차원이 다른 이케아의 경영철학이 여실히 느껴지더군요.





이케아를 둘러보고 나오니 얼마 전 신문에서 본 ’공룡 앞에서 더 강해진다’라는 기사가 떠올랐습니다. 국내 굴지의 가구업체가 자신들의 강점을 극대화하고 약점을 보완하는 전략을 통해 이케아의 한국 진출에도 불구하고 32% 이상 매출이 성장했다고 합니다. 여러 가지 전략들이 이런 성과를 가능케 했지만 저의 눈을 끌었던 단어는 바로 ‘밤샘’이었습니다. 이 회사 CEO는 기사에서 이케아와 달리 직접 건자재를 시공해주고 관리를 엄격하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고객의 불만이 접수되면 새벽 4시에 직원들이 모여 대책을 수립하여 대응했다고 말하더군요.


저는 ‘밤샘’이란 말이 불편했습니다. 상품으로 인한 고객 불만을 해소해주는 것은 물건을 판매하는 회사로서 당연한 의무지만, 그 일을 위해 직원들을 꼭 새벽 4시에 소집해야 할까요? 새벽에 나와 일찍 대책을 수립하고 신속히 대응하면 고객들은 분명 만족하고 또 감동하겠죠. 하지만 졸린 눈을 비비며 나온 직원들이 감당해야 할 과로와 맞바꿀 만큼 고객만족이 그렇게 중요한 가치인지 되묻고 싶었습니다. 고객을 왕으로 대접하라고 말하기 전에 직원들에게 어떤 고충이 있는지 먼저 살펴야 하지 않을까요? 고객만족을 위해 희생되는 직원만족… 과연 요즘의 고객들은 “싸게 사고 좋은 서비스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직원들이 괴로움을 감내하는 기업에게 과연 만족할까요? 그런 회사를 ‘좋은 기업’이라 칭송할까요? 


사실 극소수 고객들이 ‘갑질’을 하며 종업원들을 비인간적으로 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직원들에게 무조건적으로 고객만족을 강조하는 것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새벽 4시에 소집되는 경우가 실제로는 별로 없을지 모르지만, 저는 CEO가 밤샘을 성공요인 중 하나로 ‘자랑스레’ 언급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조직의 성공을 위해서 직원의 희생을 얼마나 당연시하는지를 금세 느낄 수 있더군요. ‘인력을 때려 넣어 고객을 만족시킨다’는 전략으로 그들이 공룡이라 칭한 이케아를 이길 수는 있겠죠. 하지만 전혀 스마트하지 않아 보입니다. 어쩌면 공룡은 그동안 변하지 않았던 국내 가구업체들일지 모릅니다. 공룡이란 단어를 거대 기업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멸종했다는 의미로 비유한다면 말입니다. 




이케아가 머리 나쁜 공룡이 아닌 이유는 곳곳에 걸린 디자이너들의 사진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국내 가구매장 어디를 가도 가구들이 멋지게 전시돼 있을 뿐 그것을 디자인한 사람의 얼굴은 본 적이 없었죠(해외 유명 디자이너와의 콜라보레이션을 광고하려고 걸어놓은 사진은 있었겠지만). 이케아에서는 물건보다는 디자인의 가치를, 그리고 그것을 디자인한 사람의 사상을 존중하는 철학이 매장 내에 흐르고 있었습니다. 홈페이지를 보면 제품에 담겨진 철학이 더 자세히 소개돼 있지요. 국내 가구업체들이 해외에서 열리는 가구 박람회에 자사의 디자이너를 보내 최신 디자인을 카피해 올 것을 ‘당당히’ 주문한다는 사실은 이제 누구나 아는 비밀입니다. 말로만 디자인을 외칠 뿐 디자인의 가치와 디자이너의 철학은 헌신짝처럼 버리고 오로지 돈 버는 데에만 급급한 것, 이것이 국내 가구업체들의 현실이고 패착입니다. 





부석사, 낙산사, 내소사 등 유명 사찰에 가면 사람들이 대웅전을 찾아 부처님을 바라보고 합장을 하고 절을 합니다. 대부분 불상을 바라보고나서 석탑을 둘러본 후에 절을 빠져나가곤 하죠. 하지만 부처님의 시선이 향하는 쪽을 유심히 보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절을 지을 때 부처님이 바라보는 방향을 제일 우선시하고 가장 세심하게 고려하는데도 말입니다. 알다시피 이케아는 고객이 가구를 스스로 조립하는 DIY방식을 추구하는데, 그 이유는 DIY를 통해 가구를 싸게 팔겠다라는 것이 아니라 고객 스스로 자신의 집에 맞는 가구를 만든다는 ‘창조의 즐거움’을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기사가 배달하고 설치해주면 고객이 스스로 만들고 설치하고 사용하는 즐거움을 빼앗고 가구에게 느끼는 애착을 경감시키겠죠. 이것이 고객의 시선이 향하는 쪽을 같이 바라보는 이케아만의 독특한 철학입니다. 혹자는 이케아 가구가 이사 다닐 때 버리기 쉬워서 산다고 말하던데,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자신의 노력이 투입된 가구를 쉽게 버릴 수 있을까요?






고객만족을 위해 고객을 왕처럼 바라보고 고객에게 굽신굽신하는 것은 절에 와서 부처님의 시선이 향해 있는 풍경은 외면하고 불상에 절만 하고 가는 것, 불상이 낡아보인다고 화려하게 금칠을 입히는 것, 불상 앞 제단에 매일 제물을 풍성하게 올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밤샘을 자랑하는 CEO가 과연 이케아 매장에 와서 본인이 직접(수행원 없이) 노란 비닐주머니를 들고 테이블과 의자, 스탠드와 러그를 직접 골라보며 그것들을 자기집 어느 곳에 놓을까 궁리해 보았을까요? 고객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직접 몸으로 경험해 보았을까요? 전 ‘그러지 않았다’에 한 표를 던집니다. 


국내 가구업체들은 이케아를 이길 수 없습니다. 왜냐구요? 이케아는 싸우려 하지 않기 때문에, 이기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스웨덴 국기의 청색과 노란색으로 CI를 표현한 이케아는 전체적으로 돈을 벌기 위한 쇼핑몰이라기보다 스웨덴의 문화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문화원’ 같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어떤 면에서 보면 이케아는 항상 이길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본사가 위치한 스웨덴은 어떤 나라일까 궁금해지고 꼭 한 번 여행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단순히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이 아니라 제품을 통해 문화를 전파하는 것이 기업의 새로운 역할 중 하나이니까요.


앞으로 집의 인테리어를 바꾸거나 크고 작은 가구를 살 때마다 이케아가 첫 번째 방문처가 될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땠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