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해도 된다고 생각해야 더 잘한다   

2014. 3. 7.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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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요소가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목표 달성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끈기’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거창하게 ‘역경’이란 말을 썼지만 사실 알고 보면 별것들은 아닙니다. 지루함을 느낀다든지, 몸과 마음이 지쳐서 쓰러진다든지(‘자아고갈’ 상태), 이 정도면 됐다는 포만감에 사로잡힌다든지, 인풋 대비 아웃풋이 얼마 되지 않아 실망스럽다든지 등등이 바로 목표 달성 과정에서 개인에게 일어날 수 있는 역경이죠.


이런 역경을 이겨내려면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는 것을 그동안 이 블로그에서 몇 번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오늘은 또 하나의 효과적인 방법 하나를 소개할까 합니다. 그것은 바로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쓸 수 있는 여러 선택지 중 하나로 ‘하지 않는다’는 옵션을 추가하는 방법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이 목표를 포기해도 된다’라는 선택지를 가지고 목표에 임하면, 끈기가 약화되기는커녕 오히려 강화돼서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출처: www.blessedisthekingdom.com



이 말이 직관을 거스른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험을 통해서 이를 증명한 연구가 발표됐습니다. 와튼 경영대학원의 롬 쉬리프트(Rom Y. Schrift)와 조지아 주립 대학교의 제프리 파커(Jeffrey R. Parker)는 온라인에서 106명의 실험 참가자를 모집하여 과제 수행의 결과에 따라 보너스를 지급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알파벳 문자들이 무작위하게 뿌려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메트릭스에서 어떤 주제와 관련된 단어를 찾아내는 퍼즐 게임이었습니다. 아래의 그림은  주제가 ‘유명 배우의 성(姓)’일 경우에 제시되는 퍼즐이었죠. 사전에 어떠한 힌트도 참가자들에게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보통의 단어 찾기 퍼즐보다는 상대적으로 까다로웠죠. 참가자들은 본인이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퍼즐을 중단할 수 있었고 맞힌 단어 수에 따라 보상을 받았습니다.



출처: 아래에 명기한 논문


참가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세 가지 실험 조건 중 하나에 무작위로 배정되었는데, 첫 번째 조건은 참가자들이 주제를 선택할 수 없고 ‘국가의 수도’와 ‘유명 배우’ 중에서 강제로 한 주제가 주어지는 경우였습니다(강제 조건). 두 번째 조건 역시 참가자에게 주제가 강제로 주어졌지만, 주어진 주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게임 자체를 수행하지 않아도 된다는 선택지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거절 조건). 하지만 게임 자체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참가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세 번째 조건은 국가의 수도와 유명 배우라는 조건과 함께 ‘유명 발레 댄서’를 옵션으로 추가해서 참가자들이 선택하게 했죠(세 가지 대안 조건). 사실 유명 발레 댄서는 참가자들이 별로 알 만한 주제가 아니었지만, 쉬리프트와 파커는 과연 이런 친숙치 못한 주제가 옵션으로 주어질 경우 참가자들의 끈기가 어떻게 영향 받을지 보고자 했죠. 주제가 어려웠는지 아무도 ‘유명 발레 댄서’라는 주제를 택하지 않았습니다.


통계 분석을 통해 참가자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게임 수행을 지속했는지를 측정하자, ‘거절 조건’의 참가자들이 나머지 두 조건의 참가자들보다 오랫동안 견디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418초 대 290초, 283초). 그렇다면 참가자들이 찾아낸 단어 수는 어땠을까요? 역시나 ‘거절 조건’의 참가자들 성적이 가장 좋았습니다. 이 참가자들은 평균 4.03개를 찾아냈지만, 나머지 두 조건의 참가자들은 각각 3.28개(강제 조건), 3.03개(세 가지 대안 조건) 밖에 찾지 못했죠.


이 실험 결과는 단순하게 ‘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조건을 추가하기만 하면 선택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인내력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후속실험에서도 역시나 ‘no-choice’ 옵션을 제시 받을 경우에 더 좋은 성적을 나타내는 결과가 관찰되었습니다. 아래 그림처럼 똑같아 보이는 두 개의 그림에서 다른 곳을 찾는 게임을 수행하게 했더니 ‘거절 조건’의 참가자가 가장 오랫동안 게임을 지속했고 더 정확하게 다른 곳을 짚어냄으로써 다른 참가자들보다 많은 돈을 받아 갔습니다.


출처: 아래에 명기한 논문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걸까요? 쉬리프트와 파커는 ‘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선택지가 추가되면 자기가 달성하기로 한 목표에 대한 믿음이 강화되기 때문이라고 추측합니다. 어찌됐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옵션을 주는 것이 목표 달성에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우리의 상식에 반하는 재미있는 결과임에 틀림 없습니다. 


우리는 보통 ‘배수의 진을 친다’, ‘건너온 다리를 불태운다’와 같은 말을 쓰면서 선택할 여지가 없어야만(게다가 ‘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생각조차 하지 말아야만) 목표 달성에 이롭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선택지가 오로지 하나 밖에 없어서 그걸 반드시 해야만 경우에도 ‘선택하지 않을 권리’가 있음을 떠올리면 오히려 그 하나 밖에 없는 선택지(목표)를 이룰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이 실험이 시사합니다. 


뭔가 어렵고 괴로운 프로젝트를 수행 중일 때도 ‘언제든 이 프로젝트를 포기할 수 있어’라고 의도적으로 떠올린다면 오히려 그 프로젝트를 끝까지 완수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이 실험의 결과를 저도 간혹 경험합니다. 글을 안 써져서 괴로울 때면 ‘반드시 이 글을 지금 써야 한다’라는 생각을 스스로에게 강요할 때보다 ‘안 써지만 나중에 쓰지, 뭐’라고 생각하면 의외로 그후에도 계속 글을 쓰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니까요. 


상사들도 직원이 어려운 업무 때문에 힘들어 한다면 이 실험의 결과를 살짝 응용하는 것도 좋을 거라 추측해 봅니다. 물론 ‘그 일을 하지마’라고 말해서는 안 되겠지만, ‘힘들면 다른 일을 한 다음에 해도 돼’, ‘일단 쉬고 나서 생각해 봐’라고 조언한다면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직원의 동기를 끌어올리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모르니까요. 과연 효과가 있는지 현장에서 한번씩 실험해 보기 바랍니다.



(*참고논문)

Schrift, R. Y., & Parker, J. R. (2014). Staying the Course The Option of Doing Nothing and Its Impact on Postchoice Persistence. Psychological science, 0956797613516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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