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꿈을 꾼 적이 있습니까?   

2008. 5. 27.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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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그는 내게 말했다.

  "너는 곧 죽을 운명이다. 그리고 나는 너를 죽이기로 되어 있다."

나는 그 이유에 대해 묻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운명이라는 단어의 무게감 때문이었을까? 죽어야 할 이유가 있다면 죽어야 한다고 느꼈다. 나는 말없이 그의 다음 말에 귀를 기울였다.

  "사람들이 죽기 싫어하는 이유는 죽기 직전의 공포 때문이지. 어차피 죽어야 한다면 죽어야 하는 그 순간을 인지하지 못한 채 죽는 게 행복이지. 원한다면 네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갑작스럽게 나타나서 너를 죽이도록 하겠다. 어때?"

나는 머리를 끄덕이고 동의를 표했다. 그리고 "제발 부탁이니 그렇게 해 달라."고 덧붙였다. 그는 다시 어둠 속으로 몸을 숨기면서 "죽을 그 순간이 될 때까지는 부디 행복하게 지내길 바래"라고 말했다.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얼굴을 보고 싶었으나 그의 실루엣은 칠흙같이 어두운 골목으로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그의 말처럼 그날 하루를 정말 흥미진진하게 보냈다. 친구들과 무언가를 찾기 위해 동네를 휘젓고 다니다가 이상한 사람들의 추적을 피해 한강으로 피신했다. 모든 사건이 종결되고 모험 영화의 주인공처럼 해피엔딩의 미소를 지으려는 순간, 그가 나타났다.

그는 털끝만큼의 시간도 지체하지 않고 즉시 나에게 방아쇠를 당겼다.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총알이 내 오른쪽 목을 관통하고 지나갔다. 나는 반사적으로 목을 움켜쥐었다. 목에서부터 머리 끝까지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중심을 잃은 허수아비처럼 쓰러지고 말았다.

'이런 게 죽는 것이구나'  형용하기 어려운 공포감이 밀려 들었으나 용감하게도 나는 죽어가는 느낌이 어떤지 내가 할 수 있는 한 느껴보기로 했다.  아픔은 없었다. 목이 조금 뻐근하다고 느껴지는 것 이외에 별다른 고통은 없었다. 온 몸에 기운이 드라이아이스처럼 서서히 빠져 나갔다. 눈 앞의 이미지가 점차 흐릿해졌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이렇게 죽게 해줘서 고마워. 정말 고마워." 그는 아무말도 하지 않은 채 죽어가는 내 모습을 내려다 보았다. 그는 파란 점퍼에 청바지를 입은, 다소 둔중해 보이는 체격을 지녔음을 그때서야 알게 됐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어쨋든 그가 내 죽음을 목도하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므로 나는 그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눈꺼풀이 무거웠다. 마치 헤어나올 수 없는 잠에 빠져들 듯이 눈이 감겼다. 그리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고요가 찾아왔다. 갑자기 꺼져버린 TV처럼 그렇게 절대 고독이 느껴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정말 죽었을까? 눈을 뜰 수 있을까?' 나는 천천히 눈을 떠 보았다. 죽기 직전에 그랬던 것처럼 이미지는 여전히 흐릿했다. 마치 영혼이 육체를 떠나고 난 후 저승 건너편의 세상을 무감히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내 손이 보이고 내 발이 보였다. 옆에서 자고 있는 아내와 아이의 얼굴이 보였다. 내 발에 감겨 있는 이불의 따뜻한 촉감이 느껴지고 똑딱거리는 시계소리가 명료하게 들렸다.

꿈이라는 걸 감각하기에는 너무나 생생한 임사체험이었다. 죽는 그 순간의 느낌이 실제로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죽음의 문턱을 넘어섰다가 다시 살아 돌아온 듯했다. 시계는 새벽 5시를 가리키고 있었으나 나는 다시 잠들 수 없었다.

죽어간다는 느낌이란 과연 그런 걸까? 내가 죽고 나면 영혼도 내세도 없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절대 고요의 바다를 아무런 느낌 없이 떠다니게 되는 걸까? 언젠가 죽는다면, 준비조차 할 수 없게 갑자기 죽는 게 과연 행복한 걸까? 수많은 의문부호들이 어두운 방의 공기를 휘젓고 날아다녔다.

죽는 건 두렵다. 죽은 다음은 무엇일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종교를 믿는 사람은 천국과 지옥이라는 심판의 결과가 두려울 수도 있다. 그래서, 인간이 태어나서 죽는 이유를 알지 못하는 건 어쩌면 인간에게 내려진 가장 무거운 형벌일지도 모른다.

마크 트웨인의 말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나는 태어나기 전 영겁에 걸친 세월을 죽은 채로 있었고, 그 사실은 내게 일말의 고통을 준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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