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인을 '미쳤다'고 오인하는 이유   

2013. 1. 29. 09:23
반응형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국은 전장에 투입하기 전에 징집자들에 대해 정신 감정을 벌여 임무 수행에 적합한 자를 선발하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이를 주도한 사람은 정신의학자인 해리 스택 설리번이었죠. 그는 정신 감정을 통해 지적장애자, 사이코패스, 정서 불안자, 성 도착자 등 많은 유형의 부적합자를 가려냄으로써 향후 징집자들이 전장에 투입될 경우에 나타날지 모를 '전쟁 신경증'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방지하려고 했습니다.


문제는 너무나 많은 징집자들이 설리번의 정신 감정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무려 25퍼센트나 집으로 돌려 보내졌죠.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설리번이 나름대로 전쟁에서 정신적 이상을 나타낼 가능성이 높은 자들을 배제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 감정을 통과한(그래서 전장에 배치된) 군인들 중 절반 가량이 정신의학적 이상을 이유로 제대했다는 것입니다. 무려 11만 2,500명이나 됐으니 참 이상한 일이었죠.





한창 전쟁을 수행해야 하는데 징집자들 중 대다수에게 불합격 판정을 내리고 임무 수행 중인 군인들을 '의병 제대' 시키는 상황을 마냥 두고 볼 수 없었던 군 지휘부는 설리번의 방식이 틀렸다고 판단하고 그를 해고했습니다. 그리고 대신 윌리엄 메닝거에게 신병 선발의 책임을 맡겼습니다. 메닝거는 전장에서 확실히 정신 이상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자만을 가려냄으로써 왠만하면 징집자들에게 합격 통지를 내렸습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전쟁 신경증'이 발병한 군인들의 숫자는 설리번 때보다 크게 줄었습니다.


설리번은 징집자들의 자아 도취적 성향, 의존성, 분열적 성격 등이 전쟁 신경증으로 발전하리라 봤지만, 실제로 그런 경향은 정상 범주의 성격이라는 점을 그는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정신 의학자인 나시르 가에미(Nassir Ghaemi)는 "전쟁 신경증을 찾으려고 하자 발견되었고, 찾기를 그만두자 줄어들었다."라는 말로 설리번의 오류를 지적합니다. 이 말은 '망치를 든 사람은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는 말과 같습니다. 징집자들에게 기본적으로 정신적 문제가 있을 거라 가정하면 실제로 정신적 문제를 지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신 이상자의 수가 많아진다는 것이죠.


가에미는 정신과 의사인 장 마르탱 샤르코의 사례를 들며 설리번의 오류가 꽤 일반적인 현상임을 알려줍니다. 샤르코의 관심 영역은 파리의 젊은 여성들에게서 나타나던 히스테리성 간질이었는데, 그가 파리에서 활동하던 시절에 히스테리성 간질로 찾아온 젊은 여성들이 병원을 가득 메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샤르코가 사망하자 히스테리성 간질 환자 수는 뚝 떨어졌죠. 망치가 사라지자 못으로 보이던 것들도 사라진 것입니다. 의사들의 개인적 관심이나 학계의 트렌드에 따라 정상을 이상으로 판단하는 경우는 이밖에도 많습니다. 가에미는 1980년대와 1990년대 다중인격이라는 정신 이상도 학자들의 관심에 따라 진단 비율이 급증하다가 이내 꺼져 버렸다는, 또 하나의 사례를 이야기합니다.


설리번과 샤르코가 범했던 오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을 거라 짐작됩니다. '이런 잠재적인 문제'가 있다고 전제하면 실제로 그런 문제가 거의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우리 회사에 커뮤니케이션 문제가 있다고 느낀 후에 조직을 들여다 보면 의사소통 문제가 심각하게 존재하는 것으로 결론 내리기 십상이죠. 사실 여러 사람이 모인 조직에서 그 정도의 의사소통 단절과 왜곡은 정상 범주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뜯어 고쳐야 할 문제로 오인되는 경우를 종종 접합니다. 특정 기법이나 기술을 전문으로 하는 자들이 쉽게 빠지는 대표적인 오류죠.


미치지 않은 자를 미친 자로 보려고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가진 망치가 못이 아닌 것을 못으로 보이게 만들지는 않는지 되돌아 볼 일입니다.



(*참고도서)

나시르 가에미, <광기의 리더십>, 정주연 역, 학고재, 2012



반응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