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받기 전, 상사에게 뜨거운 커피를 권하라   

2012. 5. 9.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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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찬 것이 닿은 후와 뜨거운 것이 닿은 후에 어떤 사람에 대해 평가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면 여러분은 손에 느껴진 온도와 상관없이 그 사람의 성격이나 능력을 동일하게 평가할까요?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은 그까짓 촉감이 무슨 영향을 미치겠냐며 무시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연구 결과는 많습니다. 로렌스 윌리엄스(Lawrence E. Williams)와 존 바그(John A. Bargh)는 솔로몬 애쉬(Solomon Asch)가 수행했던 실험을 확장하여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습니다(솔로문 애쉬는 동조 실험으로도 유명한 심리학자죠). 당초 애쉬는 사전에 느낀 차갑거나 따뜻한 촉감이 처음 본 누군가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실험으로 밝혔는데, 윌리엄스와 바그는 그러한 촉감이 미치는 영향을 정량적으로 측정하고자 했죠.

윌리엄스와 바그는 41명의 학부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에겐 손에 차가운 느낌이 전달되도록 하고 다른 그룹에게는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도록 했습니다. 학생들은 실험장소가 있는 건물에 도착한 후 실험의 목적을 모르는 도우미의 안내를 받아 단 둘이 엘레베이터에 타야 했죠. 도우미는 양손에 아이스 커피(혹은 뜨거운 커피), 교과서, 클립보드를 들고 있었는데, 무언가를 하는 시늉을 하며 학생에게 커피를 잠깐 들어 달라고 학생에게 부탁했습니다. 그렇게 하여 학생의 손에 차갑거나 따뜻한 촉감이 느껴지도록 했죠.




실험장소에 앉은 학생들은 'Person A'라고 불리는 가상의 사람에 대한 자료를 읽고서 그 사람이 얼마나 지적이고 단호하며 조심스러운지 등과 같은 10가지 성격 특성을 평가하도록 요청 받았습니다. 그랬더니, 손에 따뜻한 커피를 잡았던 학생들이 차가운 커피를 쥐었던 학생들보다 Person A를 더 따뜻한 사람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했죠. 이로써 손에 느껴지는 온기처럼 무시하기 쉬운 것조차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데에 의미 있는 차이를 유발한다는 점이 증명됐습니다.

윌리엄스와 바그는 손에 느껴지는 촉감이 다른 사람에 대한 평가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후속실험으로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첫 번째 실험 방식을 취하지는 않았습니다. 도우미로 참가한 사람이 비록 실험의 목적을 알지 못한 상태였지만 그도 차갑거나 뜨거운 커피를 들고 있었기에 알게 모르게 실험참가자에게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고 의심했기 때문입니다. 찬 커피를 든 도우미는 학생들을 쌀쌀맞게 대하거나 뜨거운 커피를 쥔 도우미는 학생들을 친절하게 대함으로써 그 감정이 학생들에게 전달됐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죠. 그래서 후속 실험에서는 오직 실험참가자인 학생들만 차갑거나 뜨거운 물체를 잡도록 했습니다.

실험장소에 도착한 53명의 학생들은 두 그룹으로 나뉘어 각각 냉찜질팩과 온찜질팩을 손에 잡아보고 제품을 평가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제품 평가는 사실 위장하기 위한 것이었고 학생들의 손에 차갑거나 뜨거운 느낌이 전달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 다음 실험진행자는 학생들에게 실험 참가에 대한 보상으로 두 가지 중 하나를 고르라고 했습니다. 학생들 중 절반은 자신이 마시기 위해 스내플(Snapple)이란 음료를 선택할지, 친구를 위해서 1달러 짜리 아이스크림 무료 쿠폰을 선택할지 결정해야 했죠. 반면 나머지 절반의 학생들은 친구에게 주기 위해 스내플 음료를 선택할지, 자신이 먹기 위해 1달러 짜리 쿠폰을 선택할지 역시 결정해야 했습니다.

손에 냉찜질팩을 잡았던 학생들 중 친구를 위한 상품을 선택한 사람은 25%에 불과했고 자신을 위한 보상을 선택한 사람은 75%나 됐습니다. 반대로, 손에 온찜질팩을 쥐었던 학생들 중 54%가 친구를 위한 상품을 택했고 46%는 자신에게 보상하겠다고 답했습니다. 손에 느껴진 온기가 어떠냐가 이타심과 이기심에 영향을 미쳤다는 결과였습니다.

비록 간단하지만 윌리엄스와 바그의 두 실험은 인간의 판단과 행동이 별것 아닌 듯 보이는 미묘한 것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는 평가자의 감정 뿐만 아니라 평가자가 평가 전에 어떤 촉감에 '프라이밍(priming)'되느냐도 중요한 차이를 야기한다는 결과입니다. 동절기 때 동일한 모양의 두 사무실의 온도를 다르게 하면, 동일한 사람에 대한 평가가 큰 차이를 보일 거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아래의 동영상은 EBS에서 방영된 바 있는 '인간의 두 얼굴'이란 프로그램에서 발췌한 것인데, 위 실험과 비슷한 실험 결과를 담고 있습니다. 인간의 객관적 평가 능력은 미신이라는 생각이 들 겁니다.


혹시 지금 상사에게 평가 받거나 결재를 받아야 한다면, 혹은 누군가와 중요한 협상을 하기 전이라면 그에게 아이스 커피보다는 뜨거운 커피를 권하세요. 시원한 게 좋더라도 그렇게 하는 게 유리할지 모르니까요.


(*참고논문)
Experiencing Physical Warmth Promotes Interpersonal Warm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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