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생각의 유연성을 해친다   

2012. 1. 13.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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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포스팅('당신은 아무 생각 없이 삽니까?')에서 심리학자 에이브러험 S. 루친스의 물항아리 실험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서로 용량이 다른 세 개의 항아리를 가지고 원하는 물의 양을 얻어내라는 실험이었죠. 세 개의 항아리가 각각 21리터, 127리터, 3리터 짜리일 때 100리터의 물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127리터 짜리 항아리에 물을 가득 담은 다음, 21리터 짜리 항아리로 물을 덜어내고 3리터 짜리 항아리로 두 번 물을 덜어내면 127리터 짜리 항아리에는 100리터의 물만 남게 됩니다. 각각의 항아리를 순서대로 A, B, C 라고 하면, B-A-2C의 방법으로 답을 구할 수가 있죠.

케네스 맥그로우(Kenneth O. McGraw)란 심리학자는 이렇게 B-A-2C의 방법으로 원하는 물을 얻을 수 있는 문제를 피실험자들에게 여러 개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피실험자들을 둘로 나누어 한 그룹에게는 문제를 풀 때마다 약간의 보상금을 주었고 다른 그룹에게는 보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보상 여부와 관계없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별로 차이 나지 않았습니다. 피실험자들을 여러 문제를 풀어가며 'B-A-2C'라는 패턴을 익숙해지기 때문이었죠.



맥그로우는 일찍이 루친스가 제시한 바 있었던 전혀 다른 패턴의 문제를 마지막에 슬쩍 끼워 넣었습니다. B-A-2C의 패턴으로 풀 수 없는 문제를 제시했던 거죠. 예를 들어 항아리의 용량이 각각 100리터, 26리터, 5리터일 때 52리터의 물을 만들려면, 26리터 짜리 항아리를 두 번 사용하면 52리터를 만들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B-A-2C의 패턴에 너무나 익숙해진 피실험자는 그 쉬운 방법을 찾아내는 데 제법 어려워 합니다.

맥그로우가 주목한 것은 보상의 여부가 새로운 패턴의 문제를 푸는 데 걸리는 시간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였습니다. 보상을 받은 피실험자들은 보상을 받지 않은 사람들보다 새로운 패턴의 문제를 더 오랫동안 고민하는 경향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실험은 새로운 문제 해결 방법으로 전환하는 데에 보상이 방해를 일으킴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보상을 받으면 성과가 오르리란 직관적인 상식과 반하는 결과죠.

물론 보상을 하면 성과가 향상된다는 증거도 있습니다. 하지만 보상과 성과의 비례 관계가 성립되는 경우는 지적능력이 별로 요구되지 않는 단순한 업무일 때로 한정됩니다. 지적능력이 많이 요구되는 일을 수행할 때는 보상과 성과의 비례 관계가 깨지고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이에 대한 한 가지 설명은 보상을 많이 받게 되면 좋은 성과로 보답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임무 수행에 필요한 지적능력의 일부 혹은 거의 전부를 차지하여 성과 창출에 전력을 기울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예전의 포스팅('연봉이 과도하면 성과가 떨어진다')에서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이때, 사람들은 보상 받는 금액의 절대적 크기가 아니라 수행하는 일과 그것에 주어지는 보상 사이의 상대적 가치에 의해 영향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A라는 일에 통상적으로 100의 보상이 주어질 때 150의 보상을 부여하면 50이라는 추가 보상이 부담감과 압박감으로 이어집니다. 일명 '루친스의 물항아리' 문제처럼 보상을 받지 않아도 괜찮은 간단한 과제에 보상을 받고 실험에 응한다는 것은 비록 그 절대 금액이 작더라도 피실험자들에게 압박감을 부여하기에는 충분합니다.

또 하나의 설명은 보상이 일의 가치를 떨어뜨리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맥그로우의 실험에서 보상을 받은 학생들이 쩔쩔 맨 진짜 이유일지 모릅니다. 에드워드 데시(Edward Deci)는 8명의 학생들을 2개조로 나눠 대학신문사의 헤드라인을 쓰게 하는 과제를 수행하게 했습니다. 첫 번째 조의 학생들에게는 헤드라인을 하나 쓸 때마다 50센트의 돈을 주고 두 번째 조의 학생들에게는 아무런 보상을 하지 않았습니다.

12주 동안의 성과를 지켜본 결과, 보상을 받은 학생들보다 보상을 받지 않은 학생들이 초기에 비해 더 많은 성과를 나타냈습니다. 반면 보상을 받은 학생들의 성과는 별로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이는 보상이 일의 가치를 저하시켰음을 시사합니다. 루친스의 물항아리 문제를 돈을 받고 푼다는 것이 피실험자들이 느끼는 일의 가치를 떨어뜨려서 새로운 패턴을 찾으려는 욕구를 저하시키고 B-A-2C 패턴에 집착하려고 유도했을지 모릅니다. 이처럼 보상으로 인해 사고의 유연성이 저해되기도 합니다.

어쨌든 케네스 맥그로우의 실험은 보상이 성과에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는 기존의 통념이 옳지 않다는 점을 말해 줍니다. 보상이 학습의지를 저하시키고 일의 가치를 낮게 인식시키며 성과 창출에 대한 압박감을 강화시키기도 한다는 점을 인식한다면, 직원들에게 연봉을 많이 올려주고 나서 성과의 양과 질이 향상되리라 기대하는 것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인지 깨닫게 됩니다.

랜시스 리커트(Rensis Likert)는 "직원들이 일을 잘하게 하려면 당근과 채찍이 아니라 유능한 일꾼이라는 자부심을 심어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자부심을 통해 사고의 유연성이 극대화되고 그것을 통해 자발적인 성과 창출로 이어집니다. 보상의 효과는 모르핀처럼 오래가지 못합니다. 직원들에 대한 배려 없이 보상만으로 성과 창출을 기대하거나 강제하는 것은 어찌보면 인간을 비둘기나 쥐와 같이 보상과 처벌로 특정 행동을 강화해 나타내는 동물로 취급하려는 단순무지한 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헌데 이처럼 보상이 성과 창출에 그리 도움이 안 된다는 말을 전하면, "돈이라도 많이 받았으면 좋겠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직원들이 있습니다. 그런 냉소의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런 냉소와 푸념을 곧이곧대로 믿어 연봉을 올려주면 불평 없이 열심히 일하리라 생각하는 CEO가 있다면 성과 향상은 커녕 그 조직의 냉소는 절대 사라지지 않고 더욱 악화되고 말 겁니다. 

돈이라고 많이 주면 좋겠다는 회사가 아니라, 돈을 많이 못 받아도 일하고 싶다는 회사를 만드는 게 먼저입니다.

(*참고도서 : '비합리성의 심리학')
(*참고논문 : Effects of externally mediated rewards on intrinsic motivation ,

Evidence of a detrimental effect of extrinsic incentives on breaking a mental s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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